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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초의 음식생활사<2>
동해안 소금, 소금가마에서 염전으로
등록날짜 [ 2018년04월02일 17시03분 ]

조선시대 소금은 평소에도 귀한 식품이었지만, 흉년 때는 더욱 귀한 구황식품이었다. 흉년 때는 백성들이 풀을 먹어 연명을 하는데 반드시 소금을 먹어야만 부종((浮腫)에 걸리지 않기에 나라에서는 영동지방의 소금을 갖다가 영서지방에 나눠 주었다.

낙산사는 숭유억불의 조선시대에도 왕가의 혈통을 잇게 만든 신성한 사찰로 인정받아 큰 큰 혜택을 누렸다. 승려의 부역도 감해주고 소금가마에 부과되는 염분세도 감해줬다. 세조 때부터는 인근 백성들이 소금을 구울 때 나라에 바치는 공납을 직접 낙산사로 갖다 바치도록 했다. 당시 강원도의 낙산사와 월정사, 유점사 등에 공납 하사하는 소금이 1년에 2백여석에 이르렀다고 한다. 가난한 동해안 경제규모로 볼 때 엄청난 양이었다. 이로 인해 인근 백성들이 고초를 당하는 등 큰 폐단이 발생했다. 중신들은 수차례 이를 폐지할 것을 건의했지만, 임금들은 선대인 세조가 결정한 일이라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을 취했다.

 

- 진흙 염전서 소금물 졸이고 가마로 구워

조선시대 동해안 일대에서는 어떤 방식으로 소금을 생산했을까? 서해안과는 다른 방식으로 소금을 생산한 것으로 확인된다. 1447년 세종 29년 예조 참의 이선제는 소금전매를 함부로 할 것이 아니라고 임금께 올린 계에 동·서해안의 소금 제조 방식에 대해 언급했다.


“가마솥으로 달이어서 하루 밤낮을 지내서 하얗게 나오는 것은 동해(東海)의 소금이옵고, 진흙으로 솥을 만들어 혹은 하루에 두 번이나 달이어 짜게 만든 것은 서남(西南)의 소금이온데, 서남(西南)에서는 노역(勞役)이 조금 헐하면서 수익은 동해(東海)의 갑절이나 되옵니다.”


실학자 성호 이익은 자신의 저서 <성호사설>에서 강원도의 소금에 대해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소금을 굽는데 소로 갈고 햇볕을 쏘이고 소금가마를 만드는 것 등의 일은 하지 않고, 곧바로 바닷물을 쇠가마에 퍼부어 많은 소금을 구워낸다”며, “농도(濃度) 등은 서해의 소금과 다름없으나 다만 맛이 약간 못할 뿐이다.”


17세기 문인 윤휴는 금강산기행문 ‘풍악록’에 금강산 기행 중 양양을 지나가다가 소금가마에 들어가 보았는데 바닷물을 달여서 소금을 만드는 방법이 서해와 다르고 소금 맛이 너무 써서 서해 소금보다 못하다고 했다.

이렇듯 생산비도 더 들고 맛이 떨어진다는 동해안 소금도 생산방식에 변화가 있었다. 어느 시기부터인지 모르지만 동해안에도 염전이 등장했다. 동해안에서도 진흙으로 염전을 만들어 소금물을 졸이고 다시 가마로 소금을 구워내는 방식으로 바뀐 것으로 확인된다. 그 한 사례로 고성군 간성읍 동호리에는 일제강점기 때 백사장에 1자 높이로 진흙을 깔고 바닷물로 소금을 만든 염전이 있었는데 마을 사람들은 지금도 이곳을 염전밭이라고 부르고 있다.

경북 울진은 지금 동해안 전통 소금 제조를 복원하고 있다. 경상북도의 지원으로 울진군은 과거 성업했던 울진의 전통 소금인 토염을 복원해 상품화에 들어갔다. 울진 토염은 진흙으로 만든 염전에서 바닷물을 졸이고 다시 소금가마에 끓여서 소금을 만든다. 바닷물과 진흙을 함께 섞어 졸이는 게 특징이다. 이렇게 만든 소금은 염도가 낮고 미네랄이 풍부하며, 쓴맛이 적고 감칠맛이 강하다고 한다. 울진의 토염은 동해안 전통의 소금가마 방식과 염전 건조 방식을 혼합하여 만든 소금이다. 

 
- 속초해수욕장 부근서 염전 경영

현대에 이르러 동해안 소금에 대한 기억은 대부분 사라졌다. 그러나 해방 전까지도 동해안에서는 적잖은 소금이 생산되고 있었다. 일제강점기에도 염전은 같은 면적의 논보다 3배 이상의 소득을 올렸다고 한다. 동해안의 최고 갑부로 알려진 강릉 선교장 집안은 조선시대 강릉에 정착 후 소금사업에 뛰어들어 큰 부를 축적했다. 양양군 강현면 정암리에는 옛날 염전이 있었던 ‘염전거리’가 지명으로 남아있고, 조산리에도 염전에서 소금을 생산했다. 고성군 토성면 문암리 7반은 1944년까지 염전이 있어 염전거리라고 불렸다. 속초에서 고개 하나 넘으면 나오는 고성군 토성면 용촌리 바닷가는 과거에 염전이 있다고 해서 ‘소금버덩’으로 불린다.

속초해수욕장 인근에도 염전이 있었다. 4.19혁명 이후 양양군수를 지냈던 김원진씨 부친 김철규(金哲奎)씨는 당시 부월리 일대에 상당한 토지를 소유한 재력가였다. 1991년 속초시가 발간한 <속초시지>에 따르면, 김철규씨가 지금의 속초해수욕장 부근에 염전을 경영했다. 김씨는 생필품 유입이 어려운 일제 말기 때 전 읍장 박상희씨와 읍의원 이상봉씨의 권유로 염전을 다시 조성하고자 하던 중에 해방을 맞았다고 했다.

1996년 강원도 동해출장소에서는 남서해안의 소금이 바닷물 오염으로 질이 떨어져 강원도 바닷가에 염전을 조성해 저공해 소금을 생산할 계획을 세웠다. 이때 양양군 현북면 하광정리 바닷가 갈대밭 4만여평을 염전 적지로 주목했으나 사업이 추진되지 못했다.

동해안 전통소금 복원에 앞장선 곳은 경북 울진이다. 울진에서는 전통토염을 복원해 판매하고 있다. 이와 다르게 강원도 고성에서도 청정 해양심층수로 일반소금과 함초소금, 다시마소금을 생산 판매하고 있다. 강원도 동해안 주력산업이었던 소금산업이 과연 해양심층수 산업과 맞물려 부활할 수 있을까? 지금 서해안 천일염은 가격 하락으로 큰 위기에 놓여 있다. 결국 가격 경쟁이 아니라 품질 경쟁을 해야 한다. 동해안 전통소금과 사라진 염전문화에 대한 연구가 품질 좋은 동해안 소금 생산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엄경선 전문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고성군 토성면 용촌리 소금버덩과 마을 사진. 1952년 6월 20일 한국전쟁 중 속초 인근에 주둔했던 미군 Robert H. Williams이 찍은 항공촬영사진. 과거 염전이 있던 바닷가는 지금도 소금버덩이라 불린다. 사진출처 http://flickr.com.

 

설악신문 (soraknews@soraknews.co.kr)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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