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11월 23일은 동해안 어민들의 생계에 치명적인 결정이 내려진 날이다. 그날 국무회의에서는 동해 어로한계선을 5마일 남하하기로 의결하고, 어로저지선을 넘어가는 어부들에게는 반공법을 적용해 엄중 처벌하기로 했다.
어선 피랍과 납북 문제가 본격적으로 불거진 것은 1957년이었다. 1953년 정전 협정 당시 해상 경계선에 대한 합의가 없었다. 1957년 이전에는 휴전선 일대에서의 고기잡이는 금지되었지만, 암암리에 이뤄지는 조업에 대해 남북이 모두 문제 삼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1957년 11월 지금의 통일전망대 북쪽까지 어로저지선(어로한계선)을 확대하면서 피랍사건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1957년 11월 9일 고성군 거진 앞바다에서 덕길호를 비롯한 8척의 선박과 어부 47명이 북한 경비정에 피랍된 사건이 발생한 이후로 해마다 어선 피랍사건은 줄을 이었다. 어선 피랍의 위험이 높지만 어로저지선을 무조건 남하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동해안의 대표적인 명태어장이 접경지역에 형성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1968년까지 어로저지선은 오르락내리락 조정을 거듭했다. 피랍사건이 발생하면 저지선을 남하했고, 다시 수산업 증산이 절실하면 저지선을 북상하기를 반복했다.
1967년부터 동해상에서의 남북한 갈등은 최고조에 이른다. 1967년 1월 19일 해군함정 56함이 북한의 지상포대의 포격으로 침몰해 39명의 승무원이 사망했다. 1968년 1월 23일 미 해군 정보수집함 푸에블로호가 원산앞바다에서 영해 침공을 이유로 북한 해군에 피랍됐다.
1967년 11월 3일 북한은 우리 어선 2백여척에 총격을 가하면서 토끼몰이식으로 포위하여 어선 10척과 어부 60명을 납치해 갔다. 이 사고는 동해상에서 일어난 가장 큰 피랍사건으로 당시 우리 어민을 보호해야 했던 해군도 일체 대응하지 못했다.
어민들 피랍 위험에도 생존권 더 절박
관계당국은 어선 피랍의 책임을 어민들의 월선조업으로 돌렸다. 북한측에서 군사경계선을 넘어 우리 해역을 침범해 어선 피랍을 강행하고 있는데도 정작 어민들 월선조업만을 문제삼아 공포에 몰아넣었다. 당시 야당에서 월남파병 등으로 국방력 증강에 차질이 생겨 해상에서의 어선 보호에 취약점을 드러내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검찰과 치안 당국의 어민들에 대한 협박은 계속 이어졌다. 1968년 11월 22일자 동아일보 기사에는 당시 해양경찰대장이 동해 어로저지선을 넘어 조업하다 북괴 무장경비정에 납북된 어민들은 사실상 ‘간접적인 간첩’이라고 규정하고 “어로저지선을 넘는 어부들은 반공법을 적용해 모조리 구속하는 강경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발언한 내용이 보도됐다. 1968년 12월 25일 조선일보에는 “대검공안부 담당 한옥신 검사가 두 번 이상 납북된 어부에겐 반공법과 국가보안법 특수가중처벌을 적용해 법정최고형인 사형을 구형하도록 전국지검에 지시했다”고 보도했다.
이러한 살벌한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속초를 비롯한 동해안의 어민들은 어로저지선 5마일 남하는 생존권을 박탈하는 일이라며 크게 반발했다. 국무회의 결정이 있은 지 1주일만인 1968년 12월 1일 속초에서 어로저지선 환원 복구를 위한 어민 투쟁을 결의했다. 어민대표는 “정부가 어로저지선을 5마일 남하시킨 것은 영해에 대한 주권의 포기이며 황금어장의 축소로 어민생계에 직접적인 위협을 가져오게 될 것”이라며, “어로저지선을 종전선인 북위 38도34분45초선으로 북상시키라”고 요구했다. 다음해인 2월 10일 동해안 어민 1천2백명은 어로저지선 5마일 남하로 연간 15억원 정도의 손실을 보고 있다며, 당시 야당이었던 신민당 박영록 의원을 통해 어로저지선 북상을 요청하는 청원서를 국회에 제출하기도 했다. 수년간 청원은 거듭되었지만 계속 묵살되었다.
어로저지선 남하 한달만인 1968년 12월 31일 대진 및 거진항 소속 어선 5백여척은 해경 측이 월선조업을 이유로 7척의 어선을 입건하자 이에 반발해 일체 출어를 중지했다. 1969년 1월 1일자 조선일보 보도에 따르면, 대진 거진항 소속 어선들은 남하된 어로저지선 남쪽에서 조업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해경측이 7척을 월선 조업했다고 입건했다고 반발했다.
어민들의 반발은 당시 남북한 갈등과 사회적 분위기에 비추어 볼 때 아주 이례적인 일이다. 어민들은 피랍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생존권의 문제가 더 절박했던 것이다. 결국 어민들의 요구로 1971년에는 명태성어기인 11월부터 다음해 2월말까지 어로저지선을 3마일 북상시켜 조업토록 해왔으며, 1989년 4월이 되어서야 어로한계선을 상시적으로 3마일 북상 조치했다.
“북 피랍 어부들 승선시키지 말라”
피랍 등과 관련해 동해안 어부들에 대한 조처는 가혹했다. 1971년 속초 일대에서 3백여명의 어부들이 어로한계선이나 군사분계선을 넘어 월선조업을 했다고 구속되었다. 이때 귀환납북어부는 선장뿐만 아니라 일반 선원까지도 모두 반공법과 국가보안법, 수산업법 위반으로 구속되었다. 1971년 10월 27일 춘천지검 속초지청은 어로작업 중 북에 피랍되었다 귀환한 어부들은 승선시키지 말라고 각 조합에 통보했다. 납북된 사실만 있으면 실형을 받지 않은 어부일지라도 승선을 금지시켰다. 1961년부터 당시까지 납북됐다가 귀환한 어부는 1백여척 9백84명. 당시 경향신문에서는 “어민들은 고의가 없이 납북됐던 어부들에 대해 승선도 못하게 하는 것은 심한 조치라고 반발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어선피랍과 납북 문제가 어민들의 월선조업에서 비롯되는 일만은 아니었다. 1971년 6월 3일 거진항 앞바다에서 어로작업을 하던 거진어협 지도선 협동호(15.5톤)와 전마선 8척의 선원 11명이 피랍되었다. 어선들의 월선조업과 피랍 예방을 지도하는 지도선조차 피랍되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지도선 협동호와 선원들은 다음해 5월 10일 속초항으로 귀항했고, 검찰은 귀환한 어부 전원을 수산업법과 반공업 위반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1969년 5월 29일자 동아일보 기사에는 우리나라 명태어장은 90%가 이북 청진 앞바다에 들어 있으며, 나머지 겨우 10%가 휴전선 근해에 퍼져 있는데 저지선 남하로 10% 중 80%가 출어 금지 구역으로 되어 있어 명태잡이는 끝장이 난 것이나 다름없다고 보도했다.
어로저지선 남하에 따른 피해는 막대했다. 1971년부터 1973년까지 3년에 걸쳐 속초를 비롯한 동해안 어민들은 극심한 흉어로 절량위기에 빠져 일선 시군에서 구호양곡을 풀기도 했다.
어로한계선 5마일 남하로 마을 앞바다 조업이 금지된 동해안 최북단 어촌마을인 마차진리 주민들은 지금의 속초시 장사동인 고성군 토성면 사진리 영랑호변으로 이주해야만 했다. 당시 이주민들의 고달픈 삶이 신문 보도를 통해 소개되었다.
생계 아득한 동해어민 저지선 남하와 어족고갈로 대흉어
정부는 동해어로저지선 남하에 따라 69년 10월 고성군 현내면 마차진리 조장헌씨(35) 등 1백64가구 8백여 어민들을 고성군 토성면 사진리로 집단이주시켜 가구당 14만7천원(보조70%,융자30%)씩에 82채의 주택을 마련해 주고 3가구당 3백만원씩 2년 거치 9년 상환의 융자로 15t급 동력선 45마력 1척씩을 건조해 주었으나 어선 동력화에 따라야할 발전시설 등 척당 평균 50만원의 어구 등 시설비가 소요되는데다 50만원씩의 운영비가 더 들어야 하기 때문에 가구당 평균 30여만원씩의 고리채를 얻어쓰고 이를 갚지 못해 12일 현재 최홍관씨(56) 등 90가구는 30척의 동력선을 이미 양도했다.
김창섭씨(58) 등 60여 가구가 20척을 가까스로 운영하고 있으나 이들 남하어민들은 지난 한달 동안 계속된 명태의 흉어로 대부분 절량의 위기에 놓여있다. 이들은 이곳으로 이주해 오기 전 마차진리에서는 미역, 새치, 우러기, 전복, 해삼 등 풍부한 수산자원 속에서 1백20여척의 무동력선으로도 많은 어획고를 올려 지금보다는 훨씬 윤택한 생활을 해왔으나 요즘은 이주민들 가운데 10여가구를 제외하고는 거의 절량, 아낙네들의 ‘알라스카’ 명태따기, 양어엮기 등으로 겨우 하루 2,3백원의 수입을 올려 연명하는 한편 월동 준비는 고사하고 내년 중학입학 대상자 30여명 가운데 김운학씨의 딸 해영 양 등 6명이 겨우 진학을 지망했을 뿐이어서 극심한 생활난의 단면을 드러내고 있다.
<1970년 12월 12일 동아일보>
엄경선 전문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1970년 12월 12일자 동아일보 기사에 실린 “사진리 이주 주택”. 고성 마차진리에서 1백64가구가 82채의 집으로 이주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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