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옹치에서 석봉도자기로 가는 길은 속초의 과거와 오늘이 아슬하게 교차한다. 속초 8경의 하나로 많은 이야기를 간직한 외옹치는 롯데리조트라는 거대자본의 품에 안겼다. 그곳부터 속초해수욕장까지 이어지는 길은 온갖 기획의 다양한 이름으로 호명되었으나 최근에는 ‘바다향기로’라는 이름을 얻었다. 속초해수욕장에서 곧바로 청초호 엑스포공원으로 가도 되지만, 속초의 역사를 3,000년이나 앞당긴 조양동 선사유적지는 꼭 방문해야 한다. 속초의 시작이고, 원시의 삶에 대한 역사적 상상을 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의 발걸음은 청초호로 향해야 한다. 선사유적이 유물로 역사를 말한다면 청초호는 기록으로 속초의 과거와 현재를 품고 있는 호수이다. 이중환의 택리지에는 양양 낙산사 대신 관동8경의 하나로 기록되었고, 양양군수가 부임하면 ‘논뫼호 불꽃놀이’를 할 정도로 아름다움을 인정받았다.(논뫼호는 청초호의 옛이름이다.)
청초호는 속초의 성장과 맞물리기도 한다. 일제강점기에 항구로 개발되면서 속초시가 청초호 중심의 발전을 이루게 되었다. 90년대 말에는 원래 넓이의 1/3을 매립해 유원지로 개발하였다. 그 결과 시민들의 휴식을 담당하는 공원이 되었고, 매립지에 들어선 식당들이 속초음식 문화의 새로운 장을 열면서 주차난이 생길 정도이다. 매년 각종 이벤트로 사람의 손길을 타는 공간이지만 청초호 상류는 중요한 철새도래지이기도 하여 자연과의 공존에 대한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김인섭 속초문화원 사무국장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외옹치~속초해수욕장 ‘바다향기로’
외옹치 비경에서 어떤 향기를 맡고 싶으세요?
어느 날 속초해수욕장에 걷기 좋은 길이 생겼다. 매년 모래가 깎이고 파이면서 걷기 불편하던 해변이었다. 목조데크로 외옹치까지 이어진 길은 고운 모래와 바다풍경을 만끽하기에 충분했다. 저 멀리 보이는 외옹치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아니어서 아쉽지만 현대 도시의 풍경이라고 위안을 했다. 그런데 왜 이 길의 이름이 ‘바다향기’일까. 풍경에 취하며 걷다보면 솔내음 솔솔 해송의 향이 머리를 적시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해송과 고운 모래, 드넓은 동해바다가 몸과 마음에게 건네는 위로는 속초의 자연만이 줄 수 있는 선물처럼 느껴졌다. 풍경이 눈으로 들어오다 마음으로 전해질 때 우리는 저마다의 향기를 느낄 수 있는 건 아닐까. 그리 길지 않은 구간이지만 힐링을 하기에 충분하다.
아쉽게도 바다향기로는 아직 미완성이다. 속초해수욕장부터 외옹치해안을 따라 조성되는 이 사업은 현재 속초해수욕장(1,050m) 구간만 공사를 마쳤다고 한다. 간첩이 침투한 이래 지난 60년간 민간인 통제구역이었던 외옹치 해안의 절경은 올해 말이나 되어야 만날 수 있다.
올해말까지 기다리지 못한다면 롯데리조트에서 간접적으로나마 느끼는 것도 좋다. 한 눈에 들어오지 않을 만큼 드넓은 속초해변에 놀라고, 시간의 퇴적을 몸으로 새긴 듯한 신비한 바위가 외옹치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지금까지 그 비경을 가리고 있었던 군 경계철책이 철거되고 산책로가 조성되어 시민에게 그 아름다운 자태를 보여주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남북의 분단은 외옹치를 60년간 감추었는데, 어쩌면 그것 때문에 온전히 보존될 수 있었던 건 아닐까? 마치 DMZ처럼.
롯데리조트를 내려오다 외옹치 성황당을 보았다. 외옹치는 강원도 해안가 마을에서는 유일하게 장승제를 지내는 곳이었다. 신작로가 생기고 마을에 펜션이 들어서면서 과거의 전통은 사라지고 없지만 성황당만은 남아 있다. 밭둑재 혹은 옹진이라 불리며 속초의 입구에서 아름다운 자연과 전통의 풍습을 간직해온 외옹치. 사라져가는 전통의 흔적이 ‘바다향기로’ 어딘가에 기억될 수 있도록 하면 어떨까? 우리 모두의 마음에만 있기에는 그 역사가 너무 깊고 진하기 때문이다. 정은희 속초민예총 사무국장
바다향기로는 속초해수욕장부터 외옹치 둘레길까지 이어지는 길의 새로운 명칭이다. 속초해수욕장은 지난 6월에 완성되었고, 외옹치는 현재 공사 중으로 올해 말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 길이 완성되면 새로운 명소로 각광받을 것으로 기대한다.
외옹치라는 마을의 특성을 간직한 성황당이 롯데리조트 중턱에 오롯이 서 있다. 뱃사람들에게 성황신은 삶의 고비를 책임지는 의지의 산물이자 조성 대대로 내려온 공동체적 믿음의 결과물이다. ‘바다향기로’의 시작은 이 성황당에서 출발해야 하지 않을까.
■유정충 선장, 이기섭 박사 동상
청초호에서 찾은 두 명의 영웅
탁 트인 청초호의 전경을 보며 청초호 산책길을 따라 걸어보자. 호수 건너편으로 길게 펼쳐진 속초 시내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산책로 안쪽으로는 가볍게 산책을 할 수 있는 작은 공원과 놀이터, 광장이 있다. 가족, 연인 등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거나 한적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호수공원에는 철인 3종을 기념하는 ‘설악 TRIATHLON’탑이 있다. 매년 이 앞에서 철인3종 경기를 시작한다고 한다.
공원 안쪽으로는 각종 음식점과 카페가 밀집된 거대한 상가 타운이 있다. 속초 시민들뿐 아니라 속초로 여행 오는 많은 여행객들은 이 곳에 들러 식사도 하고 커피도 즐기곤 한다. 맞은편으로 “먼 옛날 황룡과 청룡의 눈물 그 신화 속으로의 시간여행”이라고 적힌 속초 불축제를 기념하는 청룡과 황룡 동상이 있다.
공원 끝까지 산책로를 따라가 보면 호화스런 요트가 정박해있는 마리나 시설이 보인다. 운영되지 않는지 출입을 할 수 없게 입구를 막은 줄이 걸려있다. 근처에는 호수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몇몇 사람들이 보일뿐이다. 그 앞으로 호수를 바라보고 나란히 있는 두 동상을 발견할 수 있다. 아니 ‘발견’하기 쉽지 않다. 그 곳 앞에서 공원은 끝이 나고 동상 뒤를 나무가 둘러싸고 있기 때문에 굳이 찾지 않으면 그곳으로 가기 쉽지 않다.
하나는 고 유정충 선장의 동상이고 다른 하나는 고 이기섭 박사의 기념비이다. 고 유정충 선장은 1990년 3월 1일 제주도 인근 해상에서 속초 선적 하나호 선장으로 오징어잡이 조업 중 강한 풍랑에 배가 침몰하게 되자 21명의 선원을 모두 구하고 마지막까지 구조 요청을 하다 배와 함께 물에 잠겨 운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정충 선장의 가슴 아픈 이야기는 언론을 통해 국민들에게 알려졌고 그의 장례식은 사상 처음으로 전국 어민장으로 거행되었다. 유정충 선장에게는 국민훈장 목련장이 추서됐다.
고 이기섭 박사는 전쟁 후 어지러운 정국이 이어지던 50년대 이화여대 병원장으로 재직하다가 스스로 사퇴하고 당시 속초읍으로 내려와 병원을 개업하였다. 속초로 내려와 병원활동과 함께 고성 산간지역과 양양 무의촌 무료 의료봉사활동을 펼치며 의료 소외계층들을 돌보는 일에 앞장섰다.
두 분의 업적을 살펴보고 나니 지역에 이렇게 훌륭한 위인이 계셨는데 ‘왜 몰랐을까’라는 생각과 함께 부끄러움이 몰려왔다. 동시에 그들에 대한 대우가 이 정도이니 알기 힘든 것이 당연한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자연환경 빼면 무엇으로 속초를 상징하고 소개할 수 있을까? 사람들이 많이 붐비는 거리, 공원의 중앙에 있는 동상이나 상징적인 건물은 지역의 상징이자 정체성을 드러내는 수단이다. 중앙동 로데오거리에 있는 황소동상은 과연 속초와 어떤 연관성이 있단 말인가! 지역의 위인을 이런 곳에 두고 천대시하면 앞으로 이 동네는 무엇이 남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한국에서 자라나는 대부분의 학생들이 유관순, 이순신, 세종대왕으로 위인이 대동단결되는 이 시대에 자랑스러운 속초의 두 인물을 통해 위인에 대한 인식의 지평을 넓힐 수 있는 계기로 삼으면 어떨까. 속초가 아이들 마음 속에 지역의 위대한 영웅 한명쯤은 품고 자라는 마을이 되면 좋겠다.
최윤복 / 문화활동가
청초호는 각종 동상과 음식점과 자연이 어우러진 공간이다. 이곳에서 만난 유정충, 이기섭 두 분의 동상은 ‘발견’의 의지가 있어야 찾을 수 있는 공간에 숨겨져 있다.
청초호를 찾아오는 각종 철새는 사람과 자연의 어우러짐에 대한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조양동 선사유적지
과거를 만나는 우리의 자세에 대해
조양동 동사무소의 왼편 골목으로 들어서면 선사유적지로 올라가는 길이 보인다. 그 길목에는 이런 글이 쓰인 표지가 서 있다.
“현재 문화재로 지정된 구릉에서는 긴네모꼴 집자리 7기가 조사되었고, 서쪽으로 약 700m 떨어진 구릉(현재 아파트 단지)에서는 고인돌 2기가 조사되었다.”
한국에서 매장문화재의 발굴 조사는 정비, 학술발굴보다는 구제발굴로 90% 가까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비, 학술발굴이란 유적지를 정비하거나 학술 연구를 목적으로 하는 발굴을 일컫고, 구제발굴이란 개발사업에 의해 사라질 위기에 있는 매장문화재를 보존하기 위한 발굴을 말한다. 당신이 만약 개발업자라면 개발현장에서 유물과 유적지가 발굴되었을 때 그것을 신고하여 문화재청장과 협의를 하고 경비를 부담하겠는가? 지금 이 나라에서는 얼마나 많은 유물과 유적들이 사라져가고 있을까?
조양동 선사유적지도 아파트를 짓기 위한 개발사업 중에 발견되었다. 한국의 문화재는 돈과 권력, 개발이란 단어 앞에서 가차없이 무너지는 것은 아닐까? 조양동 선사유적지의 현재 위상을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속초의 시원(始原)임에도 불구하고 역사성이 거세된데다 박제되지도 못한 채 섬처럼 떠있는 구릉의 이미지가 그렇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는 단절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연속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당연히 분절해서 볼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과거를 현재의 삶과 연결하여 생각하려 하지 않고 바꾸거나 버리려 한다. 연속된 시간(기억과 추억) 속에서 미래를 향해 나아가려 하지 않고, 그것과의 단절을 통해서 ‘새로운 것’, ‘현대적인 것’들로 바꾸어 버리려는 생각과 행동으로 인해 우리는 그 기억에서 멀어져 버렸고, 혹은 지금도 멀리하려 노력하고 있다. 현대인들은 과거, 그리고 현재와 연결된 미래를 꿈꿀 수 없게 되었다.
나는 지금 ‘전통적’인 것과 ‘근대적’인 것을 대비하여 ‘무엇’이 더 낫다는 이분법적 사고를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런 구분의 해체를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다. 이런 생각의 극복을 이야기하려는 것이다. 그러려면 이 둘은 단절이 아닌 연결이 되어야 하는 것이고 불연속적이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연속적이어야만 하는 것이다. 끊긴 과거가 아닌 지속되고 있는 현재여야 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유물과 유적은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그리고 미래에까지도 그 의미가 살아서 꿈틀거리며 지속될 ‘사물’과 ‘공간’이며 꼭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즉, ‘살던’이라는 단어가 내포하고 있는 과거와의 ‘단절’이란 의미가 아닌 ‘오래된’이라는 ‘연속’의 의미가 우리의 삶에 그대로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조양동 선사유적지는 속초시민이라면 누구나 한번은 들려야 하는 곳이다. 그 공간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전통과 단절이라는 근본에 가깝기 때문이다. 속초에는 조양동 선사 유적지와 유사한 지리적 조건을 갖춘 구릉이 몇 개 더 있다. 박경원 인문학강사
아파트를 짓기 위한 공사에서 나온 유물. 속초에는 이와 유사한 지리적 조건의 구릉이 몇 개 더 있다. 아직 발견하지 못한 역사가 잠들어 있는 것이다.
아직 선사유적지를 모르는 시민들이 많을 것이다. 3천년 전 이 땅에서 살았을 청동기시대 사람들에 대한 상상은 3천년 후 이 땅을 살아갈 미래세대에 대한 생각까지 연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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