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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 만해 한용운의 ‘침묵’과 초연 박용열의 ‘고요’에 대해
등록날짜 [ 2017년10월02일 11시10분 ]
시인 초연(超然) 박용열의 탄생은 한국문학계의 놀람의 사건이었다.
동시로 출발한 그는 아동문학이 어린이 천사주의에 안주하며, 순수하고 맑은 세계만 그려야 하고 국가가 이상으로 하는 편향된 이데올로기만 선하다고 강조해야 하는 풍토 속에서 ‘고요’라는 연작시를 통해 포화속의 이 땅을 정화하며 인간 구원의 문제에 닻을 내렸다.
이현주가 동화를 통해 개발독재의 사회를 고발하고 권정생이 이데올로기의 허상을 소년 소설을 통해 비판한 것은 70년대 초였다. 박용열은 그들보다 10년 앞서 한국 아동문학 세계의 넓이와 깊이를 더해 나갔다.
박용열이 불교에 입적해 구도의 길을 찾고 그의 수련처가 오대산 월정사 일대였다는 사실은 설악산 백담사 일대에서 구도의 길을 수행하며 시를 쓴 만해 한용운을 떠오르게 한다. 만해는 ‘침묵’에 대해, 초연은 ‘고요’에 대해 시를 썼다.
서구에서 밀려온 모더니즘(근대) 속에 산 만해는 시대정신과 민족의 최고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만해의 시대에는 나라가 일제의 식민통치하에 있었고, 민족은 조국의 독립을 위해 해외는 물론이고 국내에서 투쟁하던 시대였다. 그는 그 운동의 앞에 있었다.
만해의 ‘님의 침묵’은 한국 시문학의 큰 수확물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근대(모던)는 이성이라는 도구로 합리성을 추구하며 전 시대에는 상상도 못할 제도와 가치들을 탄생시켰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이데올로기, 과학문명, 민족주의와 국가주의, 식민지 확장과 독립운동, 그보다 더 많은 개념과 분야들이 생겨났다.
모더니즘(근대)의 이 다양하고 복잡한 영역들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건을 만들어냈다. 사건은 곧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이 이야기들은 인간과 세계에 대한 큰 이야기, 즉 거대담론이 되었다.
만해의 ‘님의 침묵’은 결국 근대가 만들어낸 거대담론의 꽃이라 할 수 있다. 만해의 ‘님’은 민족일 수 있고 조국이며 인간이 궁극적으로 찾아야 할 거룩한 존재일 수 있다. 그래서 ‘님의 침묵’은 거대담론, 큰 이야기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초연 박용열의 ‘고요’는 거대담론의 대열에 합류하지 못한다.
그는 큰 이야기들 간의 갈등이 빚어낸 전쟁 가운데서 큰 피해를 입었음에도 비껴나 ‘고요’ 속에서 미시적 일상들에 대해 애정을 지니고 바라보며 참을 그린다.
니체가 산속에서 짜라투스트라를 그려놓고 아무도 자기에게 시선도 주지 않자, 자신의 두 귀를 향해 노래를 부르듯, 박용열은 천년 간 외롭게 서있는 돌 위에 글을 새긴다.
박용열의 부처님에게선 부성(父性)을 느낄 수 없다. 그의 부처님은 부드럽고 다감하다. 그의 부처님은 어머니이고, 모성이다.
처마 끝의 풍경, 가랑잎, 조각배, 애기스님, 돌부처, 여치, 감, 오솔길, 구름, 노을.
모더니즘의 거대한 이야기가 눈길도 한번주지 않던 산속의 미세한 양상들에 대해 그는 애정을 가지고 바라본다. 모더니즘이란 거대한 강물이 물결을 일으키고 흘러가는 세계 속에서 그는 징검다리를 밟으며 절룩거리며 걸어간다.
동요와 동시는 형제였다. 그러나 동요는 멜로디와 함께 음악으로 남아있을 뿐 문학으로 존재하지 않은지 반세기가 넘었다. 동생을 잃은 동시는 박용열 시인 같이 다리를 절며 외롭게 진리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장 프랑수아 리오타르가 말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작은 이야기가 바로 박용열의 시를 두고 한 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박용열은 세상을 들뜨게 하지도 않았고 화려한 조명을 받지도 않았다. 그러나 창작을 중단하거나 게을리 하지도 않았다.그의 작은 이야기 속에는 항상 ‘아트만’이 있다. 동시에 ‘부라만’이 있다. ‘아트만’과 ‘부라만’의 합일상태는 살아있음이며 생명이다.
그는 구도를 이야기하고 있다.
이반
예술철학·설악문화예술포럼 회장

설악신문 (soraknews@soraknews.co.kr)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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