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많이 완화되었음을 느끼게 되는 요즘이다. 규제가 어느 정도 풀려서인지, 모이는 자리마다 여럿이 왁자지껄하게 웃고 떠들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보게 된 것이 얼마만인지 모르겠다는 이야기들이 오갔다. 그런 자리마다 또 술이 빠지지 않게 되고 어쩌면 ‘보복음주’라는 표현이 어울릴 만큼 과음을 하게 되는 일도 잦아졌다.
얼마 전 일요일 아침, 전날 과음한 것에 비하면 비교적 일찍 눈을 뜨게 된 탓에 고성에 있는 해수 사우나에 들렀다. 많이 규제가 완화되었다고는 하지만 아직은 사우나에 가는 것이 왠지 마음 한편으로는 불안한 마음이 들긴 했었다. 그래도 음주 후 사우나에 가는 루틴이 얼마 만이었는지….
사우나를 마치고 개운한 마음으로 바닷가를 천천히 걸었다. 좋은 공기, 푸른 하늘, 맑은 바다의 느낌을 즐기면서 걷다 보니 바다 끝자락 모래사장에서 모래성을 쌓고 있는 한 가족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빠와 어린 딸은 열심히 모래를 파내서 모래성을 쌓고 있었고 엄마는 그 옆에서 흐뭇한 미소를 띠며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고 있었다. 잔잔한 파도가 몇 번인가 지나가고 이윽고 제법 큼직한 파도가 그들이 쌓아놓은 모래성에 들이쳤다. 잔잔한 파도가 닥칠 때 모래성을 좀 더 높게 두텁게 보강하던 아빠의 노력 덕분이었을까? 모래성은 견고하게 파도를 막아냈다. 온 가족이 환호성을 올리며 기뻐하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머금어졌다.
행복해 보이는 그 가족의 모습을 지켜보다 보니 문득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친하게 지냈던 한 형님의 모습이 겹쳐져 떠올랐다. 그도 역시 한 가족의 가장이었고 삼남매의 다정한 아빠였으며 믿고 의지하던 남편이었다. 필자와는 같은 동네에 살면서 같은 성당을 다니던 교우였으며 가족 단위 모임을 함께하기도 하면서 두텁게 친분을 쌓아왔던 관계였다.
그랬던 그가 병원에서 더 이상의 치료는 의미가 없다는 판정을 받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가 임종 하루 전이었다. 다행히도 의식이 남아있어 다른 이들을 알아볼 수 있을 때 그를 볼 수 있었고 앙상해졌지만 따스한 온기가 남아 있던 손을 잡을 수 있었다.
아버지의 자리란 그런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태평양에서 시작되었을 동해바다의 거친 파도를 막아주는 방파제의 역할까지는 아닐지 몰라도 가족들의 소중한 추억을 만들고 지켜주는 모래성 같은 존재. 괄목할 만한 부나 명예나 권력을 가지진 못했을지 몰라도, 언젠가 스러져버릴 모래성 같을지는 몰라도 한 가족의 울타리이며 존재의 원천이기도 했을 아버지라는 자리.
임종을 앞둔 그의 침대 옆에는 고등학생인 그의 막내아들이 기말시험 대비기간이라 공부하던 것으로 보이는 참고서와 문제집 등이 펼쳐져 있었다. 공부방이 따로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와의 시간을 좀 더 함께 하고픈 아이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비록 그의 육신은 흔들리고 쇠락하였을지라도 그가 사랑한 가족들에게 그의 아버지라는 자리는 더할 나위 없이 견고해 보였다.
이젠 어쩌면 더 이상 사람들의 관심의 영역에 있진 못하겠지만, 그와 함께 했던 사람들의 뇌리에서는 여전히 건강한 웃음을 주며 살아있을 그. 비록 그의 육신은 세상을 떠났을지라도 그와 함께 했던 모든 시간들을 기억하는 남아있는 자들의 기억 속에서는 영원히 살아있을…
고 최동화 요셉 형의 영원한 안식을 기원합니다.
전형배
데일리F&C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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