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소외는 어디든지 존재하는 현상으로, 카프카의 소설 《변신》에서 “가족을 위해 상점의 판매원으로 고달픈 생활을 반복해 오던 그는 어느 날 아침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침대 속에서 자신이 한 마리의 커다란 벌레로 변해 있는 것을 발견한다. 문밖에서는 그의 출근을 재촉하는 부모와 여동생의 소리가 들리고, 한 시간도 채 못 되어 상점에서 지배인이 달려와 출근을 조른다. 그는 이들의 요구에 응하지 못하여 번민한다. 잠겨 있던 방문이 열리고 벌레로 변신한 그를 보는 순간 아버지, 어머니, 여동생, 지배인은 모두 놀란다.” 딱딱한 등껍질, 배의 주름과 무수히 많은 가느다란 발, 주인공 그레고르 잠자에게 벌어진 이 사건은 악몽이 아니라 현실이었다. 그런데 이 놀라운 변화에도 그레고르는 가장 먼저 직장에 지각할까 봐 걱정하였다. 그는 파산한 아버지, 천식이 심한 어머니, 미성년인 누이동생을 위해 집안의 가장으로서 매일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직장 생활을 하면서 한 번도 결근한 적이 없었다. 집에서는 그레고르가 잠긴 방문 틈새로 자신의 처지를 호소하려고 하지만 아무도 그의 목소리를 알아들을 수 없다. 어머니는 벌레가 된 아들을 보고 놀라 실신하고, 아버지는 거실로 힘겹게 나간 그레고르를 혐오스러워하며 그에게 사과를 집어 던진다. 성실한 직원이었음에도 단 한 번의 지각으로 회사에서 해고당하고, 가족을 부양하겠다는 책임감으로 일했으나 가족들은 벌레가 된 그를 보고 슬퍼하기는커녕 마주치는 것조차 피한다. 가족마저도 그레고르를 애정과 연민으로 대하지 않았다. 그는 결국 더러워진 자기 방에서 여러 날을 굶주리다가 새벽 종소리를 들으며 숨을 거둔다. 카프카의 ‘변신’은 현대인이 처한 실존 상황을 보여준다. 벌레로 변한 주인공 그레고르 잠자는 현대인들의 상징적 존재이다.
반 퍼슨은 《몸·영혼·정신》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사실 ‘나’라는 말은 어떤 관계(가령 가족 관계)에서만 사용되기 때문에 단지 ‘나―아버지’, ‘나―삼촌’ 등의 형식으로만 나타난다. 개인은 친족 관계와 집단 관계에서 비로소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므로 한 인격은 여기저기 확산되고, 보다 넓은 관계의 장에서 그가 담당해야 하는 역할과 떨어질 수 없다. 이 관계가 없이, 곧 개인으로서는 아무 것도 아니다. 그의 행동거지는 사회적·신화적 공간 안에서 결정된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내부 세계와 외부 세계, 몸과 영혼을 그렇게 엄격하게 구별해 놓을 수 없다.”
인간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삶을 지탱하고 끊임없는 창조와 변화를 일구어 왔다. 인간은 단순한 집단의 개념이 아니라 발전적 관계의 총화이다. 이때 상호간의 소통은 사회적 관계의 근간을 이룬다. 그런데 근대 이후 현대사회가 되면서 소통의 인간관계는 점점 뿌리를 잃고 붕괴되기 시작했다. 타인에 대한 무관심, 핵가족화, 왜곡된 인간관계, 굴절된 의사소통 등이 이러한 현상을 말해주고 있다. 자신의 슬픔과 고민을 얘기할만한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고, 그나마 왜곡된 내용으로 타인에게 전달되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또 다른 슬픔을 경험하게 된다.
<계속>
이종식 국제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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