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0년 사이 속초 수산업의 근간이었던 오징어 어획량이 1/10로 줄었다. 이제 오징어는 금징어라고 불릴 정도로 귀해졌다. <설악신문> 기사를 통해 그 변천을 살펴보자.
1992년 오징어 가격폭락 파동
지금 오징어가 귀해져서 문제이지만, 1990년대 초반에는 오징어도 많이 잡힌 데다 원양산이 국내에 반입되면서 가격이 폭락해 큰 문제로 대두됐다. 원양산 오징어 국내 과다반입은 1984년 1차 파동에 이어 1992년 2차 파동이 일어났다. 1992년 봄 동해안에서 오징어 어획량이 2배 늘어나고 가격은 절반으로 떨어졌다. 수산청에서는 폭락 오징어 수매에 나섰고 수협은 오징어를 많이 먹자고 판촉 캠페인도 벌였지만 역부족이었다. 오징어 풍어에도 불구하고 어민들은 가격하락으로 큰 고통을 받았다.
전국의 오징어채낚기 어민 1,000여명은 1992년 5월 13일 오후 2시 여의도광장에 모여 폭락한 연근해산 오징어를 전량수매하고 대형트롤어선의 불법 어로를 규제해달라고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1992년 5월 18일자 <속초신문> 1면 머리기사에는 속초를 비롯한 오징어채낚기 업주들이 관계당국에 대형 트롤 불법 오징어 싹쓸이를 막아달라고 요구한다는 기사가 게재됐다. 속초채낚기선주협회는 지난 1990년부터 대형트롤어선들이 채낚기 허가 조업구역인 동경 128도 동쪽 포항 앞바다에 몰래 들어와 채낚기어선들이 집어등으로 모은 오징어를 저인망으로 모두 훑어가서 속초지역 70여척의 채낚기어선 840여명의 어민가족이 생계를 위협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오징어가 많이 잡히는 이유는 대형트롤어선의 불법 어로행위 때문이라고 했다.
그해 6월 오징어값 폭락으로 속초수협 냉동창고에 냉동오징어 592톤이 쌓여 헐값으로 오징어를 처분해야할 지경에 이르렀다. 수산청이 국내 연간 오징어 소비량이 30만톤인데 50만톤에 이르는 원양오징어 국내 반입을 허용하는 바람에 오징어값이 폭락했다는 것이다. 8kg 1팬당 2만원 내외였던 냉동오징어가 1년 만에 절반가격인 1만원 이내로 떨어졌다. 냉동오징어 보관료만 하루에 44만8,000원씩 들어가 6개월이면 8,000만원에 이르니, 더 이상 보관만 할 수도 없는 형편이 됐다. 오징어값이 폭락하자 어선들은 출어를 포기했다. 오징어를 잡아와도 20마리 1상자에 2,000원, 1,600원에 거래될 정도로 헐값에 거래되었다. 속초시도 나서서 냉동오징어 소비촉진운동을 벌였는데, 연안 오징어 8kg 1팬당 1만3,500원에서 1만1,500원에 판매했다. 강원도 차원에서도 오징어 팔아주기운동을 벌여 그해 11월 28일간 34.4톤의 오징어가 4,700여만원에 판매됐다.
대형채낚기 IMF로 치명타 입고 감척
1993년 2월 15일자 <설악신문>에는 “오징어 채낚기 선원이 줄고 있다”는 제목으로 만성적인 빈곤으로 선원이 줄고 있는 속초 채낚기어업의 현실을 조명했다. 오징어채낚기는 1년에 보통 4회 장기출어를 하는데, 바다에서 저녁부터 다음날 해 뜰 때까지 겨울철에는 14시간, 한여름에는 8~10시간 조업을 하고 낮에는 다른 일로 바빠서 거의 잠잘 시간도 없을 정도로 고되고, 귀항해서 일주일 뒤에 다시 출항하기에 가정생활을 할 수 없다고 했다. 두 달에 1회 출어로 100만~150만원의 수입을 올리게 되어 월 50만원 내외 수입밖에 되지 않았다. 몇 해 전만해도 오징어 채낚기 선원을 가려 뽑던 시절이 있었지만, 요즘 속초 판장은 한산하다고 했다.
1993년 9월 13일자 <설악신문>에 따르면, 1993년 8월말까지 오징어가 1만3,500톤 잡혀 지난해 9,617톤보다 4,000여톤이 증가했다. 위판가는 연근해산 1팬이 8,000원~1만원으로 지난해보다 2,000원~3,000원 떨어졌다. 반면 위판가보다 10% 더 높게 책정되는 정부 수매량은 작년보다 2,000톤이 줄어들어 4,000톤이 됐다.
IMF 경제위기로 대형채낚기는 회복할 수 없는 치명타를 입었다. 1999년 2월 1일자 <설악신문>에 따르면, 속초지역 대형오징어채낚기는 1990년대 초에는 90여척에 이르렀으나, 이후 줄어들다가 IMF 이후 한꺼번에 10여척이 부도를 맞아 41척으로 줄었다. 1988년 8kg 1팬에 2만~2만3,000원 하던 오징어 가격은 1997년에는 최하 6,000원~7,000원까지 떨어졌다가 1998년 들어 1만6,000원으로 회복했다. 1999년 2월 속초의 대형 오징어채낚기 어선 42척이 정부에 감척을 신청했다. 결국 2000년 1월 어선 감척사업으로 속초시 대형채낚기어선 45척 중 절반이 넘는 29척이 감척어선으로 확정되어 1차분으로 16척이 먼저 정부에 인도됐다.
1990년대 들어 속초 마른 오징어도 사양길에 들어섰다. 1995년 8월 7일자 <설악신문>에는 속초 명물 마른 오징어의 외지출하가 어렵다는 기사가 실렸다. 1994년부터 부산에서 출하되는 저인망어선 오징어와 가격경쟁에서 밀려 서울 쪽으로 오징어 출하가 어려워져 건조업을 아예 포기하는 가구가 급격히 늘었다. 지역에서 오징어가 나지 않아 부산에서 오징어를 구입하지만 수송비나 인건비 부담으로 생산원가가 1급당 최고 1,300원 정도 부산보다 더 들어가기에 많은 건조인들이 외지 출하를 포기한 것이다. 속초시건조인협회 회원 146명 중에 90명만이 오징어 건조작업을 했다.
1990년대 말에는 속초 지역시장에서도 지역 오징어가 경쟁에 밀리기 시작했다. 1999년 4월 5일자 <설악신문>에서는 속초의 건어물가게에서 값싼 외지산을 선호해 속초산 마른 오징어가 점점 밀려난다고 보도했다. 1998년 속초의 오징어 건조량은 전년도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1997년 산오징어 20마리 1만원 판매
대형오징어채낚기가 사양화된 반면 연근해 산오징어 어획이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1997년 6월 23일자 <설악신문> 1면 머리기사에서는 연근해 오징어가 작년보다 10배 많이 잡혀 수협 등 관계기관이 오징어 팔아주기 운동을 벌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속초수협에 따르면 5월 1일부터 6월 15일까지 오징어 어획량이 845톤으로 작년보다 10배나 늘었다. 이에 따라 오징어 가격이 폭락해 전체 수산업계가 어가 동반하락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속초 앞바다 10마일 해상에서 채낚기 어선 50여척이 하루 평균 1만급의 어획량을 올렸는데, 20마리 1급에 활어는 평균 6,300여원, 죽은 선어는 평균 3,500원대에 거래됐다. 물량이 몰릴 때는 활어 4,000원, 선어 2,000원까지 떨어질 때도 있었다. 지난해 1/3 수준으로 떨어진 오징어 가격으로 어선들은 출어경비를 충당하기에도 어려운 실정이라고 했다. 이에 속초시는 지역 관공서와 타 시군에 오징어 구매를 요청하는 공문을 보내 신청을 받았다. 수협은 직원들이 직접 나서 26개 아파트단지를 돌며 부녀회를 대상으로 판촉에 나서기도 했다.
동명항 활어장 상인들과 오징어어획 어민들의 오징어 가격 문제가 마찰을 빚기도 했다. 1997년 6월 8일부터 분쟁이 해결되어 동명항 활어장에서 오징어 위판이 이뤄졌는데, 동명항 활어판매장 27개 업소에서 하루 1,000급~1,200급의 물량을 받고 위판가는 생산단가 7,000원 이상을 유지할 것을 합의했다. 활어장에서는 산오징어 20마리를 1만원에 판매했다. 연근해에서 오징어가 많이 잡히자, 2000년 8월 속초 장사항에서 오징어맨손잡기축제가 개최돼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2002년 9월 2일자 <설악신문>에는 속초 연안 오징어 풍어로 울릉도와 부산에서도 원정 조업까지 와서 밤이면 불야성을 이룬다고 보도했다. 예년보다 오징어 어획량이 37% 늘어났고, 오징어 활어 1급 가격이 1만1,000원~1만3,000원에 거래되어 예년에 비해 20% 정도 떨어졌다.
2004년 8월 9일자 <설악신문>에서는 산오징어 어획량이 큰 폭으로 감소했다고 보도했다. 7월 한 달 산오징어 어획량이 178톤으로 지난해 271톤보다 34% 감소했다. 앞바다에서 오징어가 잡히지 않아 먼 바다로 출어를 해야 하는데, 출어 자체를 포기하는 어선도 늘었다. 8월 3일 속초수협의 위판가는 20마리 한 급에 최고 12만5,000원까지 뛰었다. 횟집에서는 보통 1마리에 1만원은 보통이고, 최고 2마리에 5만원까지 오징어값이 치솟기도 했다.
지금 속초 선적으로 러시아에 출어하는 대형오징어채낚기는 8척에 불과하다. 속초 오징어 어획량은 1993년 1만3,290톤으로 최대를 기록한 이후 2010년까지 4,497톤, 2013년 2,612톤으로 감소했으며, 2017년과 2018년에는 1,000톤 미만으로 떨어졌다. 지금은 오징어 위판가격은 어황이 좋으면 1급당 1만7,000원~2만원대로 떨어지고, 어황이 부진하면 10만~11만원까지 치솟기도 한다. 이제는 그 흔하던 오징어가 귀해져 20여년 전 활어장에서 1만원에 산오징어 20마리를 먹을 수 있었던 시절은 그저 전설 같은 이야기로만 기억될 뿐이다.
엄경선 전문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1997년 또는 1998년 무렵 영금정 입구에 있던 어느 활어판매장에서는 연근해산 산오징어 25마리를 1만원에 판매했다. 사진 엄경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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