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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신문 30년, 다시 보는 그 시절<11> / 우리 지역 이산가족 상봉 이야기(상)
“50년 만에 아버지 상봉, 단 5일 만남으로 끝나”
등록날짜 [ 2020년06월22일 10시45분 ]

실향민의 도시에서 수십 년 만에 가족이 상봉했다는 소식만큼 가슴 뭉클한 이야기가 어디 있을까? 지난 30년간 발간된 <설악신문>에는 우리 지역 이산가족 상봉 소식이 간간히 소개되었다. 지금 다시 들여다봐도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1995년 2월 27일자 <설악신문> 1면에는 “50년 만에 아버지 상봉, 단 5일 만남으로 끝나”라는 제목으로 속초 장사동 장천마을 최영길씨 부자 상봉 소식이 실렸다.
최영길(당시 53세)씨는 1995년 2월 8일 50년 만에 아버지 최병규(당시 85세)씨를 상봉했지만 부친이 2월 13일 노환으로 돌아가셔서 만남은 5일 만에 끝났다. 부친 최병규씨는 대포국민학교를 졸업하고 해방 전에 속초읍사무소에 근무했다. 1945년 해방을 맞아 월남한 후 소식이 끊어져 같은 남한 땅에 살면서도 서로 모르다가 50년 만에 고향을 찾아와 극적으로 아들과 만난 것이다.
월남 후 부친 최병규씨는 개성 근처에서 북쪽 상인과 물물교환 일을 했었다. 이 때 서북청년단 사람들에게 발각되어 심하게 맞아 기억상실증에 걸렸다. 그래서 자신의 이름과 가족과 고향도 모두 잊어버렸다. 대신 김진하라는 이름으로 호적과 주민등록을 만들어 전혀 다른 사람으로 인생을 살아왔다. 속초에도 관광을 왔었는데 자신의 고향이라 생각하지 못했다. 50년 동안 주로 황지, 문경, 함백 등지에서 광부생활을 하거나 경부선 도로공사 막일을 했는데, 뒤늦게 둔 딸이 보살펴줘 늙어서는 경북 구미에서 살았다. 그러다가 신기하게도 2개월 전부터 기억이 되살아나서 경북 구미에서 속초로 사람을 보내 결국 아들을 찾아왔다.
부친과 함께 월남했던 형 기욱씨는 한국전쟁 전에 먼저 속초로 돌아왔다. 하지만 남한으로 탈출해 이적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원산형무소에 수감되어 19살 나이에 사망했다.
3살 때 헤어진 부친을 50년이 지나서 만난 최영길씨는 평생 처음으로 ‘아버지’라는 이름을 불러봤다. 안타깝게도 부친 최병규씨는 아들을 만난 지 5일 만에 쓰러져 숨을 거뒀고, 가족과 친지가 모인 가운데 고향 장천마을 뒤 문중산에 묻혔다. 

러시아 캄차카 형과 속초 동생 만남
1996년 12월에는 49년 만에 러시아에서 고향 속초를 찾아온 전상수씨가 동생들을 상봉했다. 이 사연은 <설악신문> 1995년 9월 4일자와 1996년 12월 16일자에 실렸다.
1995년 8월 광복 50주년을 맞아 MBC에서는 해외이산가족 특집으로 러시아 캄차카주에 사는 전상수(당시 68세)씨를 찾아가 만났다. 속초읍에 살던 전상수씨는 해방 후 인공치하였던 1947년 취업모집을 통해 일자리를 찾아 러시아로 건너갔다. 그 후 고향과 연락이 끊어진 전씨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으로 본인과 부인의 비석을 미리 만들어 각자의 고향인 속초읍과 함남 신창읍을 새겨놓고 살고 있었다. 우리나라와 러시아는 1990년 수교를 맺기 전까지는 교류가 거의 없었다.
취재진은 돌아와 전씨의 누이와 형제 이름을 속초시 호적계를 통해 찾는 과정에서 전상익 현 속초시의원이 전씨의 막내 동생이라는 걸 확인했다. 전씨가 러시아로 떠날 때 막내동생 전 의원은 네 살. 전 의원은 형이 러시아에서 고향집에 보내온 사진을 <설악신문>에 공개하기도 했다. 생사불명인 맏형 전상수씨만 빼고 남동생 넷은 모두 속초에, 여동생 셋은 강원도에 흩어져 살고 있었다.
보도 후 1년이 넘어서야 형제의 만남이 이뤄졌다. 다음해인 1996년 9월 전상익 의원이 러시아 캄차카를 방문해 형을 만났다. 다시 전 의원이 형과 조카딸을 초청해 1996년 12월 1일부터 2주 일정으로 전상수씨가 속초를 방문했다. 전상수씨는 1947년 속초를 떠난 지 49년 만에 다시 고향땅을 밟았다. 전씨가 살던 집은 갯배 선착장 인근인 청호동 1통 1반. 옛 집은 사라졌지만 둘째 동생 전상엽씨가 근처에 살고 있었다. 전씨는 방문 2주 기간 중에 동생 7명을 모두 만날 수 있었다.
 1997년 4월 14일자 <설악신문>에는 50년 전에 러시아로 떠난 속초 사람이 혈육을 찾는 편지를 속초 동명동장 앞으로 보내온 사연이 실렸다. 1997년 4월 7일 동명동장 앞으로 낯선 러시아 변방주에서 편지 한 통이 왔다. 러시아공화국 스따브로뽈스키 크라이(道) 네프찌꿈스키 라이온(郡)에 거주하는 김동준(당시 66세)씨가 50년 전에 고향을 떠나면서 헤어진 이산가족을 찾는다는 사연을 담은 편지였다. 1월 20일 자로 편지를 보냈으니, 편지가 도착하는 데만 2개월 반이 걸렸다. 발신지는 속초에서 직선거리로 5천km 이상 떨어진 곳으로 러시아 서남쪽 끝 흑해와 크림반도 근처이다.
김동준씨는 1931년 지금의 동명동 등대전망대 남쪽 도로변에 있는 속초읍 2구 3번지에서 태어나 친형과 조카 등과 한 집에서 살았다. 김씨는 1945년 3월 25일 속초영랑국민소학교를 졸업했고, 1947년 5월 27일 소련원동어업노동자 모집에 2년 계약으로 지원하면서 고향을 떠나 지금까지 러시아에 살고 있다고 소개했다. 김씨는 편지에 친형 김동락과 조카와 이웃사람 30명 이름을 적어 보냈다. 김씨는 한국과 러시아 수교 이후 다행히 모스크바에서 사업하던 한국동포 덕분에 속초시 관광사진 잡지를 구하게 되었다. 영금정 사진을 확대경으로 들여다보았다. 옛 집터는 남아있는데 집은 변한 걸 확인했다.
동명동사무소에서는 수소문 끝에 4월 9일 속초를 찾아온 친조카 김자열(당시 61세)씨에게 편지를 전달했다. 김자열씨는 서울 장안동에 살고 있었다. 한국전쟁 당시 부모와 손아래 남동생 4명이 모두 북으로 피난가고, 막내 남동생은 공습으로 사망해 남한 땅에 김씨 혼자 고아로 남겨졌다. 이웃의 도움으로 18살까지 속초에서 살다가 서울에 가서 결혼해 정착했다. 기쁜 마음으로 50년 만에 삼촌의 소식을 접한 김자열씨는 정작 한국전쟁 때 북으로 간 부모 형제는 생사여부 조차 확인할 길이 없었다.

중국서 북에 두고 온 가족·친지 상봉
1990년 8월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이 발효된 이후 개인적으로 제3국을 통해 이산가족 상봉이 가능해졌다. 속초의 일부 이산가족은 중국을 거쳐 북에 두고 온 가족과 친지를 만나거나 소식을 주고받기도 했다.
 1997년 5월 26일자 <설악신문>에는 속초 임상철씨가 중국 길림성에 사는 사촌을 찾아 만났으나 이름이 같다는 이유로 국내 초청이 무산된 사연이 실렸다. 임상철(당시 74세, 본명 임상선)씨는 중국 길림성 연길시에서 태어나 함남 안변으로 1942년 이주해 한국전쟁 중에 어머니와 형제를 남겨두고 아버지와 함께 단 둘이 월남해서 속초에 정착했다. 1996년 길림성에 사는 동포를 만나서 우연히 작은 아버지 소식을 듣게 되었다. 임씨는 1996년 6월 중국에 가서 사촌동생을 만나 북에 있는 가족 소식을 전해 들었다. 어머니와 다른 형제들은 한국전쟁 때 사망하고 여동생은 강원도에 살고 있었다. 임씨는 사촌을 초청했으나 자신과 이름이 같다는 이유로 초청이 불허됐다.
 1999년 3월 15일자 <설악신문>에는 창간 400호 특집으로 영북지역 남북이산가족 상봉사례 2건이 실렸다. 이 무렵 북한 가족과 연결되어 서신왕래를 하고 있는 이산가족이 다수 있었는데, 북한 가족들의 안전문제로 내용을 밝히기를 꺼렸다.
속초 허장희(당시 76세)씨는 중국 길림성 화룡시에서 태어나 함경북도 성진으로 이주했다가 한국전쟁 때 어머니와 부인, 3살 어린 아들을 두고 혼자 월남했다. 월남 후 1군사령부 민사처 문관으로 근무하다가 속초에 정착한 허씨는 중국 장촌에 살고 있는 처제와 연락이 닿아 지난 1991년 8월에 중국에 가서 2개월간 머물면서 41년 만에 북에 두고 온 아들을 만났다. 임씨는 성진에 살고 있는 아들에게 TV와 자전거를 사주고 달러를 건네줬다.
 속초 중앙동에 사는 윤병정(당시 81세)씨는 한국전쟁 당시 흥남 앞바다 화도에서 목선을 타고 월남해 군인으로 복무했다. 북에는 부모와 부인, 다섯 살 딸과 세 살 아들을 두고 왔다.  중국 길림성에 사는 8촌 누나와 연결되어 1994년 중국으로 가 20여일간 머물면서 북한에 사는 가족들과 연락했다. 결국 8촌 누나의 아들이 함경남도 무산에 사는 윤씨의 아들을 만나서 윤씨의 편지를 전달하고 답장을 받아왔다.                             
엄경선 전문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지난 1996년 12월 49년 만에 속초를 찾은 전상수씨와 동생들과 상봉해 고향마을 청호동에서 사진을 찍었다. 1996년 12월 16일자 설악신문 보도.

 

설악신문 (soraknews@soraknews.co.kr)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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