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의무교육을 받았다면, 홍난파와 현제명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특히 홍난파는 초등학교만 다녔어도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음악인인데, 잘 알다시피 <고향의 봄>이 바로 홍난파가 작곡한 동요곡이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필자가 초등학교를 다니던 1960년대에 음악교과서는 홍난파가 작곡한 동요곡들로 거의 도배되다시피 했었다.
초등 2년 때 배웠던 <햇볕은 쨍쨍>(햇볕은 쨍쨍 모래알은 반짝….), <달맞이>(아가야 나오너라 달맞이 가자….), 초등 3년 때 배웠던 <퐁당퐁당>(퐁당퐁당 돌을 던지자….), <여름>(바구니 끼고서 도라지 캐러간….) 등등이 모두 홍난파의 동요곡들이었다.
중학교 음악교과서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장안사>, <금강에 살으리랏다>, <옛 동산에 올라>, <사공의 노래>, <봉선화> 등등 모두 홍난파가 작곡한 노래들로 채워져 있었다. 그 때 나는 대통령은 으레 박정희였던 것처럼 한국 최고의 음악가는 홍난파인 줄 알았었다.
하지만 그 후, 음악을 전문적으로 공부하는 과정에서 그게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시나브로 알게 되었다. 아니, 깨닫게 되었다.
홍난파의 음악 작품 수준에 대한 평가는 일단 접어두고라도, 홍난파가 친일파였다는 역사적 사실은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이제는 별 새삼스러운 사실도 아니지만, 홍난파는 일제 강점기에 ‘모리카와 준’이라는 일본식 이름으로 친일적인 음악 활동을 했었다. 하지만 그 시대에는 누구나 친일에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 만약, 나도 그 시대에 태어나서 유명 음악인으로 활동을 했었다면, 일제의 온갖 탄압과 회유에 지조를 지키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홍난파의 서구 지향적인 음악 사상이었다고 생각한다. 홍난파는 당시 ‘음악의 서구화야 말로 음악의 선진화’라는 왜곡된 음악 사상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한국 전통 음악은 미개한 원시 음악이므로 폐기해야할 음악이라고 주장했었다. 한 마디로, 홍난파는 뼛속까지 친(親) 서양 음악적이었다. 그래서 그는 죽을 때 유언도 서양음악의 지휘자가 입는 ‘연미복을 입혀서 화장(火葬)을 시켜달라’는 것이었다.
홍난파와 다름없는 음악 사상을 가진 음악인 중의 한 명이 가곡 <그 집앞>의 작곡가 현제명이었다. 그 역시 일제 강점기 때 ‘구로야마’라는 일본 식 이름으로 친일 음악 활동을 했었다. 그런데 더욱 불행한 것은, 현제명은 광복 이후 초대 서울음대 학장이 되어 음악 권력을 마음껏 행세했다는 것이다. 그 결과, 아직까지도 우리나라 음악계는 친일 음악인들의 세력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역시, 친일 음악인 중의 한 명이었던 김성태도 서울음대 학장으로서 음악적 권력을 누렸는데, 설상가상으로 그는 1910년에 태어나 2012년에 작고하였으니 102세라는 길고 긴 삶을 살았으며, 이 기간 동안 음악인으로서 온갖 부귀영화(?)를 다 누렸다. (이에 비해, 홍난파는 43세에, 현제명은 58세에 작고)
물론, 내 개인적으로 김성태의 가곡 <동심초>나 <산유화>는 애창곡이다. 나 외에도 김성태 음악 애호가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사적인 이유로 김성태의 역사적 과오를 덮을 수는 없다.
아무튼 친일 음악가의 원조이자, 서구 지향적인 음악 사상의 원조였던 홍난파의 염원대로 현재 우리나라는 온통 서양 음악이 판을 치는 음악 선진국(?)이 되었다. 그래서 바흐를 음악의 아버지로 모시고 있고, 베토벤을 음악의 성인(聖人)으로 모시고 있다. 또한 친일파 후손들은 여전히 승승장구하고 있다. 그리고 예전만은 못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음악 교육 현장에서 홍난파와 현제명의 음악적 위세는 무시할 수가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조성진이 쇼팽콩쿠르에서 우승을 백 번 한들 우리나라가 진정한 음악 선진국은 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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