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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초의 택시운전사 황상기의 살아온 이야기<20> – 삼성과의 협상
반올림을 지킨 황 대표
등록날짜 [ 2019년11월04일 16시43분 ]

피해자와 삼성전자 간의 직접 대화는 유미 씨가 숨진 지 6년 만에, 그리고 반올림이 활동을 시작한 지 5년 만에 이뤄졌다.
반올림의 부단한 노력을 무시하고 가로막던 삼성전자는 2012년 9월, 행정소송 항소심 원고 다섯 명에게 법적 조정을 제안해 왔다. 이에 원고들은 삼성과의 대화를 위해 정부와의 소송을 중단할 수 없다는 점과, 소송은 그대로 진행하면서 삼성과 대화할 수는 있다고 의견을 모아 반올림을 통해 삼성에 전달했다.
2013년 1월, 삼성은 법적 조정이 아니라 대화를 공식적으로 제의했다. 이후 반올림과 삼성전자는 2013년 3월부터 10월까지 다섯 차례에 걸쳐 실무 교섭을 진행했고 그해 12월 18일 1차 본 교섭을 열었다.

순탄치 않은 삼성과의 교섭
삼성과 대화가 진행되자 반올림과 함께하기로 했던 피해자와 가족들은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행정소송에 이름을 올렸지만 반올림 활동에는 소극적이었던 이들도 반올림의 행보에 큰 관심을 기울였다.
첫 번째 본 교섭은 삼성전자 기흥사업장에서 열렸다. 황 대표는 다른 피해자, 그리고 반올림 활동가들과 함께 반올림 교섭단의 대표로서 참여했다. 그런데 첫 번째 본 교섭부터 삼성이 반올림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해서 애를 먹었다. 실무 협의에서 반올림 활동가의 교섭단 참여를 합의했음에도 삼성은 반올림 활동가들에게 피해자 위임장을 요구하며 위임받지 않은 반올림 활동가의 교섭 참가를 반대했다. 반올림은 삼성의 이러한 요구가 협상을 집단협상이 아닌 개별협상으로 규정하려는 것이라며 반발했다. 황 대표가 보기엔 삼성의 이런 행태는 피해자들과 반올림을 분열시키려는 수작이었다.
이후 삼성전자와의 교섭 과정은 순탄하지 못했다. 반올림과 삼성은 제3의 중재기관에 대해서도 입장이 갈렸다. 삼성은 제3의 중재기관을 두기를 원했지만 반올림은 삼성과 직접 교섭을 원했다. 또한 삼성은 협상에 참여한 피해자 8명의 보상에 대해 우선 논의하자고 했지만 반올림은 교섭에 참여하지 않았어도 피해가 명백한 전원에 대한 보상을 역설했다.
반올림과 삼성 간의 협상이 원활하지 못한 사이에 2014년 8월 말 행정소송 2심의 판결이 나왔다. 결과는 1심과 같았다. 소송 참여자 5인 중 황유미 씨를 포함한 2명만 산재를 인정받았고 세 사람에 대해서는 그렇지 못했다. 근로복지공단은 항소심 결과에 대해 상고를 포기했고 이로써 황 대표는 딸의 억울한 죽음에 대한 한을 조금이나마 풀 수 있었다. 근로복지공단이 애초에 합당한 판단을 했다면, 그리고 근로복지공단이 1심 결과에 불복하고 항소하지 않았다면 몇 년 더 일찍 해결될 수 있었다는 것을 고려하면 2심 결과는 마냥 좋기보다 때늦은 일이었다. 2심 결과 산재를 인정받지 못한 3명의 당사자와 유족은 대법원에 상고했다.
 
피해자와 유족들의 동요
언론 중에는 삼성과의 협상에 나선 반올림을 매도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리고 반올림과 삼성 간의 협상에서 진전이 쉽지 않자 피해자와 유가족들은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다. 황 대표와 반올림 활동가들은 이런 이들을 달래고 있었지만 피해자와 유족들의 동요는 점점 더 커져 갔다.
특히 삼성의 ‘교섭 참가자 8명 우선 보상’ 제안은 반올림 교섭단을 분열시켰다. 결국 2014년 9월 피해자 6인의 당사자 및 가족이 반올림에서 떨어져 나가 별도의 조직인 ‘삼성직업병가족대책위원회(가대위)’를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반올림과 가대위의 갈등, 즉 피해자끼리의 대립이 있었다. 가대위에 속하게 된 어떤 이는 반올림 활동가를 향해 상스러운 욕설을 험하게 내뱉었다. 가대위는 반올림에 적대적인 감정을 계속해서 고스란히 드러냈다. 가대위에 속한 이들은 반올림이 문제 해결 의지가 없고 이해당사자보단 오로지 노동 투쟁을 위해 움직이는 단체라고 비난했다.
반올림 활동가로 활발한 모습을 보이던 한 유족이 가대위에 참여하면서 황 대표에게도 가대위 참여를 권했지만 황 대표는 반올림을 떠나지 않았다. 황 대표가 가진 관점으로는 반올림을 버릴 수가 없었다. 반올림 활동을 해온 언젠가부터 황 대표는 삼성전자에서 일하던 딸을 잃은 한 명의 개인이 아니었다.
유미 씨가 마지막 숨을 몰아쉬던 때 황 대표는 유미 씨가 병에 걸린 이유를 찾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이 약속을 지키기가 쉽지 않았다. 삼성, 그리고 우리 사회의 제도적·관습적 폭력에 맞서지 않고서는 그러기가 어려웠다. 아버지로서 딸과의 약속을 지키고자 했던 평범한 택시운전사는 이 어려운 길을 포기하지 않고 반올림과 함께 한 발 한 발 걸었다. 그 길을 걸으며 그는 우리 사회의 모순을 절감했다. 그리고 그는 딸과 같은 죽음이 재발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딸과 한 약속의 연장선에 있다고 생각하게 됐다.
 <다음에 계속>
구술 황상기 반올림 대표
정리 이광호 객원기자 campin@hanmail.net
2014년 3월, 참여연대에서 발간하는 월간지 <참여사회>와 인터뷰할 당시의 황상기 대표(사진 촬영 - Nina Ahn).

 

이광호 (campin@hanmail.net)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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