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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초 문화로 거닐다<174> / 속초사자놀이 고문 변경일 옹
“잔소리도 나처럼 요령 있게 해야 해”
등록날짜 [ 2019년07월29일 15시49분 ]

함경남도 북청군 속구면 상성리 351번지. 변경일(80) 옹은 이북 주소를 정확히 외우고 계신다. 언제든 돌아가야 할 곳이었기에 한 번도 잊은 적이 없다. 고향을 떠나온 날도 정확히 기억한다. 1.4후퇴 당시 12월 26일. 함흥과 소진을 거쳐 주문진으로 와서 학도병으로 6개월 근무했다. 삼척에서 부모님을 만난 후 주문진에서 다시 1년을 보내고 속초로 왔다. 전쟁의 끝, 아직 완전한 수복이 되기 전 학사평에 있는 미8군 소속부대에 들어간다.
1958년은 사자놀음과의 운명이 시작된 해이다. 군대 복무 중이던 옹은 그날 운명처럼 외박을 나왔고, 사자놀음을 함께 했다.
속초에 피난 온 이북사람들은 피난살이의 서러움을 사자놀이로 풀었다고 한다. 변변한 연습실이 없었기에 여인숙을 운영하던 김하륜(퉁소) 어르신의 집에서 연습 겸 놀이겸 사자놀음을 놀았다. 원래 북청의 사자놀음은 정월대보름 전날 저녁부터 밤새 놀았던 전통문화였다. 그 전통이 피난살이로 흘러들어왔다. 그리고 그날, 도청건립을 위한 길놀이에 우연히 합류하면서 사자놀음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막내로 북청 아바이들과 사자놀음
전쟁의 후유증으로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 그 아버지에게서 퉁소를 배운 김하륜 아바이, 사자 앞채이자 무형문화재였던 김수석(중요무형문화재) 아바이. 그 분들과 함께 막내로 시작한 사자놀음은 잊을 수 없는 고향, 그 서러움이었는지 모른다.
“금호동 거서 연습해서 큰 집들도 우리 가게 잘되게 해달라고, 좀 두드려 달라고 애원을 하고, 청호동에도 한 이틀 밤씩 돌아댕기고, 아야진, 거진 다 오라고 하는 거야, 그때는 우리가 대단했어.”
이북에서 온 사람들이 사자탈을 쓰고 거리를 휘젓고 다닌다. 그들의 사자놀이는 액운을 막는다고 한다. 배를 타고,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었기에 누군가의 바람이 필요했는지 모른다. 길놀이 해달라고 고성에서도 불렀다고 한다. 돈도 많이 모였다. 실향민 마음의 고향 북청도청 건립을 위한 본격적인 공연의 시작이다.
지금말로 치면 생활예술이었다. 속초 실향민의 사자놀음은 퉁소를 비롯한 악기와 사자탈 만들기, 춤, 민요, 재담이 어우러졌다. 특별히 잘해서가 아니라 흥에 겨워 즐겼기 때문에 이어졌다. 먹고 사는 일에만 몰두하는 것보다 함께 모여 노는 일은 요즘말로 하면 공동체놀이였는지 모르겠다. 70년대 들어 길놀이가 아니라 공연을 하러 다니게 되었다. 중요무형문화재가 된 것도 영향이 컸다. 1970년대 중반 춘천 문화관 건립 행사에 초청되었다. 1981년에는 설악산에서 개최한 새마을대예술제, 1983년에는 속초 제일극장에서 양반탈을 쓰고 공연을 했다. 그 사이 아버님 친구나 후배들은 나이가 많이 들었다. 같이 모여 퉁소가락에 장단을 맞추기는 했지만 제대로 된 공연은 힘이 부쳤다. 김수석, 김하륜 아바이가 안타까워했다. 그래도 어쩌랴. 세월을 막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사자놀이는 기교보다 흥이 중요”
속초시에서 사자놀이를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2,000년대 들어서다. 북청 출신 어르신들이 고향 그리운 마음으로 놀았던 ‘북청사자놀음’이 90년대를 넘어 실향민 2~3세대와 속초의 다양한 구성원이 함께 하면서 ‘속초사자놀음’이 되었다. 명칭이야 뭐가 중요한가. 김수석 아바이의 꿈이 이뤄지는 듯 했다. 덩달아 신이 났다. 2010년 즈음 강릉원주대 장정룡 교수가 찾아왔길래 옛날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아버지를 비롯한 실향민 1세대의 공연 이야기, 사자탈 만들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잘못 알려진 이야기도 수정해 주었다. 힘이 불끈 솟았다. 가슴이 뜨거워졌다. 내친김에 사자놀이를 갖고 경연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연습한다는 속초시립박물관을 찾았다. 2013년도였다. 자리에 앉아 그들의 사자놀음을 보았다. 좋은 옷을 입고 좋은 악기를 세련되게 불었다. 사자춤도 추고, 무용도 있다. 연습실도 좋았다. 갖출 것 다 갖췄는데 한 가지가 빠졌다. 흥이었다. 신나게 해야 하는데 잘하려고만 했다.
“사자춤은 말이야. 그냥 앞채를 잡고 크게 흐엉하며 소리치며 해야 하는데 너무 약해. 하나도 안 무서워. 김수석 아바이가 길놀이를 할 때면 치성을 드린 후 ‘에헤’라고 소리를 던져. 그 소리가 겨울밤 정적을 깨는 거야. 그리고 퉁소하고 그 다음에 악이 들어가야 해.”
사자춤의 기교보다 연희자의 흥이 앞서야 한다, 퉁소는 잘하는 오야붕(?)이 먼저 끌고 가야한다고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그 잔소리가 오늘의 문화재를 만들었는지 모른다. 2010년 이후 속초북청사자놀음보존회에서 속초사자놀음보존회로 변화하고 강원도 무형문화재가 되면서 속초사자놀이보존회로 명칭이 바뀌는 과정을 모두 지켜보았기 때문이다. 정월대보름 행사는 물론 문화재 지정을 위한 평가 자리에도 불편한 몸을 이끌고 나와서 허리 꼿꼿이 세우며 사자를 노려보셨다고 한다. 그런 열정 끝에 사자놀이가 속초의 대표 문화로 서게 되었다.
변경일 옹은 강원도무형문화재 제31호 속초사자놀이보존회의 고문이다. 이북 고향에서 피난 내려오고, 아버지에게 배운 퉁소와 양반 역할을 통해 실향의 아픔을 문화로 이겨낸 사람. 함께 놀던 고향 사람들이 가고 난 후 속초에서 사자놀이 한다는 젊은이들에게 잔소리를 늘어놓는 ‘고문’이 되었다. 정월대보름을 비롯해 1년에 몇 번 만나지 못하지만 사자놀이를 한다는 이유만으로 기특하고 고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언제까지 사자놀이에 관심을 가질 것인지 물었다. 그게 기한이 어딨냐는 핀잔이 날아온다. 보존회에서 연락만 하면, 언제든지 보러갈 생각이라고 한다. 그런 날이 오래도록 이어지길 바라본다.                                  김인섭 전문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올해 팔순인 변경일 속초사자놀이보존회 고문. 보존회에서 연락만 하면, 언제든지 보러갈 생각이라고 한다.
2019년 정월대보름 전날 길놀이. 사자춤은 변경일옹의 가장 큰 관심사이다. 김수석 어르신의 포효가 지금 오늘의 사자에게도 나오기를 바란다.
변경일 옹의 사진첩에서 발견한 사자놀이 공연사진. 1983년 새마을지도자 예술공연에서 양반탈을 쓰고 공연했다는 메모가 있다.
2013년 속초시립박물관 연습실에서 사자춤을 설명하는 변경일 옹. 이날의 인연을 시작으로 매년 연습 때마다 참여하신다.
 

설악신문 (soraknews@soraknews.co.kr)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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