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상기 대표는 1970년대 말 스물세 살의 나이에 울산으로 가게 된다. 친구 매형의 소개로 한 대형 조선소에서 일하기 위해서였다. 조선소에서 일하게 된 초기에는 일거리가 많아서 아침 7시에 출근해 어떤 날은 밤 11시까지도 근무했다. 일이 너무 고됐지만 속초에서는 아무리 힘들게 일해도 먹고 살기 어려운 것을 생각하며 뼈가 부서져라 열심히 일했다. 그런데 그는 조선소에서 일했음에도 그 조선소 소속이 아니었고 급여는 월급이 아닌 시급으로 받았다. 황 대표는 자신의 노동 형태가 하청업체 노동자였는지 아니면 개인 용역 방식이었는지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지만 조선소 소속의 노동자로서 일하지 않은 것은 확실하다고 한다. 혹자들은 비정규직이나 파견근로 같은 불안정노동이 1990년대 말 외환위기 이후, 이른바 ‘아이엠에프’ 후에 생겨난 것으로 아는 경우도 있지만 불안정노동은 이미 박정희 정권 아래에서도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조선소서 일하며 운전면허 취득
그곳에서 황 대표가 맡은 일은 배의 단열재 시공이었다. 배의 철판에 단열재로 석면을 붙이고 함석을 대는 작업이었는데, 지금 돌아보면 그 당시 현장은 발암물질인 석면을 사용하는 위험한 노동 환경이었다. 작업 시 마스크는 지급됐지만 환기가 잘 되지 않는 좁은 작업 공간이라 답답함을 피하기 위해 대개는 마스크를 벗고 일했다. 당시에도 그곳의 노동자들은 석면이 좋지 않은 물질이라고 말하곤 했지만, 열악한 작업 환경이 마스크 착용을 어렵게 했다. 그런데 현장의 어떤 관리자도 마스크 미착용은 물론이고 노동 환경을 문제 삼지 않았다. 이러한 장면은 수십 년의 시차를 두고 그의 딸이 위험한 작업 환경에 노출된 것과 묘하게 겹쳐진다.
그러던 어느 날 울산에 함께 간 친구가 자동차 운전을 하면 돈을 잘 번다면서 같이 운전면허를 취득하자고 얘기했다. 황 대표는 운전면허를 따기는 어려울 거라고 지레 짐작하고 친구의 제안에 주저했다. 하지만 그 친구는 한번 가서 살펴보고 판단을 하자며 그를 재차 설득했고 그는 학원에 가서 알아보고는 마음을 바꿔 운전면허에 도전했다. 필기시험 합격 후 실기시험장이 있는 마산까지 가서 본 코스주행 시험은 그리 어렵지 않아 단번에 합격했지만 도로주행에서는 한 번 고배를 마셨다. 그래도 그다음 시험에서는 무난히 합격했는데 그때가 1978년이다.
조선소에서 일한 지 1년쯤 지나자 조선업에 불황이 찾아왔고 그는 조선소에서 하루에 채 8시간도 일하지 못할 때가 많았다. 시급으로 돈을 벌던 그는 수입이 줄자 다시 속초로 돌아왔고 이전처럼 배를 타며 이따금씩 건설현장에서 일했다. 그리고 그 와중에 틈틈이 운전 실력을 키워나갔고 1980년에 드디어 택시회사에 취직했다.
통금에 걸리면 경찰 태우고 순찰
회사택시를 몰던 시절 황 대표는 오전 8시에 영업을 시작해 밤 12시가 다 되도록 일했다. 1982년 야간통행금지가 해제된 이후에는 오전 2시까지 차를 몰았다. 열심히 일한 것 외에 절약에도 주의를 기울였다. 밥값을 아끼려고 점심과 저녁은 집으로 들어가서 먹고 다시 택시를 몰러 나갔다. 이런 습관은 이후 수십 년간 계속됐다. 황 대표는 택시를 몰다가 집에 가서 밥을 먹지 않고 바깥에서 해결한 적이 지금까지 거의 없다고 한다.
통금이 있던 시절 밤늦게까지 일하다 보면 의도치 않게 통금에 걸린 날도 있었다. 그런 날은 경찰을 차에 태워 시내 한 바퀴를 같이 돌았다. 당시 파출소에는 차가 없어서 경찰들이 통금에 걸린 택시를 순찰용으로 활용했다. 이렇게 경찰과 함께 순찰을 하고 나면 경찰들도 택시운전사의 통금 위반을 문제 삼지 않고 귀가할 수 있게 해줬다.
지금은 밤이 오면 속초 거리에 사람들이 많이 없지만 예전 속초에는 지금과는 달리 젊은 사람들이 많아 밤늦게까지 돌아다니는 이들도 제법 됐다. 그러한 까닭에 자정이 지나서도 택시를 찾는 이들이 적지 않았고 역시 젊었던 황 대표도 한밤중에 택시를 몰았다.
그가 택시 운전을 시작한 때에는 개인이 차를 소유한 경우는 적었고 도로에도 차가 많이 없었다. 그 시절에는 택시 운전이 추석 무렵에 특수를 누렸다. 벌초나 성묘를 위해 산에 가야 하는 가족 단위 승객들은 택시를 타기 위해 승강장 앞에 길게 줄을 섰다. 추석이면 그 줄은 아침부터 시작해 낮 12시 넘어서까지도 그리 줄어들지 않았다. 가족 단위 성묘객들은 보통 음식을 한가득 지닌 채로 택시 한 대에 정원보다 더 많이 탔다. 당시에는 차에 에어컨이 없었고 엔진룸 열기를 차단하는 장치가 없어서 가을임에도 낮에 택시를 몰다보면 더웠다. 그래서 차창을 열고 다녀야만 했고 성묘객들을 실어 나르느라 비포장길을 달려서 온종일 먼지를 뒤집어썼다. 하지만 벌이가 좋은 때에는 그런 일쯤이야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다음에 계속>
구술 황상기 반올림 대표
정리 이광호 객원기자 campin@hanmail.net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