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
뉴스홈 > 인물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쪽지신고하기 기사글확대 기사글축소 기사스크랩 이메일문의 프린트하기
속초의 택시운전사 황상기의 살아온 이야기<2> – 배를 타던 시절
목숨 걸고 선장에게 밥을 가져다준 청년
등록날짜 [ 2019년06월10일 14시15분 ]

열일곱 무렵 황상기 대표는 바로 아래 동생과 함께 기와 만드는 일을 하러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일을 마치고 집에 갔는데 어머니는 밥을 하지 못한 채로 두 아들을 맞았다. 집에 쌀이라곤 한 톨도 없어서 이웃을 찾았으나 역시 쌀이 없었고 결국 동네에서 쌀을 구할 수 없었다. 이에 황 대표는 동생에게 일러 일터로 돌아가 돈을 빌려 오게 해 그 돈으로 저녁을 먹을 수 있었다. 황 대표는 그날 밥을 먹으며 많은 눈물을 흘렸다.
어린 시절엔 먹을 것도 풍족하지 않았고, 또한 입을 옷도 부족했다. 황 대표는 당시 돈을 주고 옷을 사 입는다는 생각은 해보지 못했다. 다른 이들이 입지 않는 옷을 주곤 해서 입었는데 그 옷들이 작으면 작은 대로, 크면 큰 대로 입고 다녔다. 그런데 겨울이 문제였다. 두꺼운 옷이 없어서 얇은 옷을 입은 채로 긴 겨울을 버텼다.

꽁치잡이 후 처음 먹어 본 냉면
오징어잡이를 주로 하던 황 대표에게 봄은 힘든 시기였다. 돈벌이가 마땅치 않았기 때문이다. 스무 살 전후에는 동사무소를 통해 사방공사와 나무 심기를 할 수 있었다.
황 대표는 열아홉이 되던 해 봄에 친구 아버지가 선장으로 있는 꽁치잡이 배를 탔고 그 배에서 취사를 맡았다. 꽁치잡이는 2월에 시작해 삼척에서부터 점점 북쪽으로 올라왔고 꽁치잡이 그물은 대개 새벽에 당겼다. 어느 날은 조도 뒤에서 그물을 놓았는데 물살이 너무 빨랐다. 선장은 선원들에게 서둘러 그물을 당기라고 재촉했고 두 시간 동안 꽁치와의 사투가 이어졌다. 그때 그물을 당기다가 하마터면 그 힘에 이끌려 배가 북한으로 넘어갈 뻔했다고 한다.
당시 꽁치잡이는 전체 수입에서 경비를 제하고 이익을 개인별로 나누는 식으로 배분했다. 황 대표는 그해 봄 꽁치잡이로 제법 많은 돈을 받을 수 있었다. 배당을 두둑이 받은 선원들은 속초중앙시장에 함께 냉면을 먹으러 갔다. 황 대표는 그때 처음으로 냉면을 먹어봤다. 당시에는 냉면 보통의 양이 지금의 곱빼기보다 많았다. 황 대표는 그날 냉면이 어찌나 맛있던지 냉면 한 그릇을 순식간에 다 비운 후 한 그릇 더 먹었다.
오징어잡이는 스무 살이 넘어서도 몇 해 더 다녔다. 당시 오징어잡이 경쟁이 치열해져 더 먼 바다로 나가야만 했다. 한 번 나가면 이틀씩 작업했고 오징어는 얼음과 함께 담아서 육지로 옮겨 왔다. 당시 배에 냉장시설이 없어서 육지에서 싣고 간 얼음을 잘게 부숴서 오징어에 뿌리고 나면 금세 녹아버렸다.
그러다가 오징어잡이는 울릉도가 더 낫다는 얘기를 듣고 그리로 갔는데 처음에는 벌이가 괜찮았다. 하지만 소문은 금세 퍼졌고 7개월쯤 후에는 울릉도에 많은 배들이 몰려서 황 대표는 속초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울릉도에 머물던 시절에는 독도에 두 번 가봤다. 바다 위에서 며칠 동안 있으려면 물이 필요해 독도의 샘에 가기 위해서였다. 독도에는 죽은 갈매기들이 많이 보였고 갈매기 깃털이 너무 많아 그 장소를 지나다 보면 발이 쑥쑥 빠질 정도였다. 거기를 지나면 굴속에 물이 떨어지는 샘이 나왔다. 그 물에서는 짠맛이 났지만 며칠 동안 조업을 계속 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그 물을 마셔야만 했다.

냄비 든 채 바닷물에 휩쓸려 갈 뻔
한번은 대화퇴어장까지 배를 타고 나갔다가 태풍을 만난 적이 있다. 혹독한 바람 속에서 배는 요동을 쳐서 하늘 위로 솟았다가 이내 파도보다 더 낮은 곳으로 떨어졌다. 그런 상황에서 선원들은 갑판 밑에서 꼼짝도 못하고 가만히 있었고 그 배의 선장은 하루 가까이 키를 붙들고 험한 바다를 헤쳐 나갔다. 배가 심하게 움직여서 곤로가 바닥 위에 바로 서 있지 못해 선원들은 밥을 해먹기 힘들었다. 황 대표는 그런 상황에서 선실의 문을 닫아 바람을 막고 곤로를 고정시킨 다음 밥이 될 때까지 냄비를 잡고 있었다. 그렇게 밥을 하고 나니 쌀은 덜 익었는데 죽처럼 퍼졌다. 황 대표는 거기다가 간장을 뿌린 다음에 밥을 굶은 채로 파도와 싸우는 선장에게 들고 갔다. 선장에게 가는 길은 불과 몇 미터였지만 파도가 심하고 갑판이 미끄러워 하마터면 냄비를 든 채로 바닷물에 휩쓸려 갈 뻔했다. 선장에게 밥을 가져다줬더니 선장은 황 대표에게 심하게 고함을 쳤다. 위험한 상황에 밥을 들고 오는 게 제정신이냐며 매우 화가 난 듯 타박했다. 그러나 파도가 잠잠해지자 선장은 황 대표에게 진심어린 표정으로 고맙다고 말했고 배가 울릉도에 도착한 후 선장은 황 대표에게 다시 한 번 더 고마움을 표했다.
울릉도에 도착하니 부둣가에는 천막들이 보였다. 알고 보니 천막은 태풍에 희생된 이들을 임시로 안치하기 위해 마련한 것이었다. <다음에 계속>
구술 황상기 반올림 대표
정리 이광호 객원기자campin@hanmail.net                       

 

이광호 (campin@hanmail.net) 기자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좋아요 0 싫어요 0
관련뉴스
- 관련뉴스가 없습니다.
“자연 속에서 몸과 마음의 상처 치유하세요” (2019-06-10 14:15:00)
고성군 1인 ‘농업방송’ 대표주자 (2019-06-03 09:55:00)
동해북부선·동서고속철 역사, ...
양양∼러시아 하늘 길 다시 열려
손양 동호~상운 해안관광도로 개...
고성군의회, 경찰에 산불조사결...
평화지역 소규모 식당 활성화 추...
‘금어기·금지체장 강화’ 어업...
1
불편함 감수하면서도 ‘교복 착용 지지(57.7%)’
1968년, 문교부가‘ 학생의 학생 다움’을 강조하며...
2
신임 이진성 8군단장 취임
3
속초시 간부공무원 무더기 공직 떠난다
4
속초의 택시운전사 황상기의 살아온 이야기...
5
‘속초 희망 콘서트’ 내빈소개 놓고 ‘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