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고성에서 발생한 산불이 강한 바람을 타고 속초로 번지면서 폐허로 변해버린 장천마을에 온정의 손길이 답지하면서 이재민들이 점차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
지난 9일 오전 찾은 장천마을은 화마가 할퀴고 간지 4일이 지났지만 간간이 바람이 불 때마다 메케한 냄새가 코 끝을 자극했다.
불에 타 폐허로 변해버린 장천교 입구의 물류창고는 아직 산불피해 현장조사가 끝나지 않아서 그런지 잔재물들이 그대로 방치돼 있었다.
불이 번진다는 소리에 집 주인이 급히 몸만 빠져나왔다는 바로 건너편 민가는 현장조사가 진행 중인지, 여러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마을 안으로 들어가자, 이재민들이 임시 기거하고 있는 마을회관 앞은 자원봉사단체들이 부스를 마련하고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어 북적였다.
이날은 농협농가희망봉사단과 한국전력사회봉사단, 대한적십자사봉사회 속초지구협의회, 대한불교조계종 제3교구 본사 신흥사·신흥사복지재단이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었다.
나흘째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는 신흥사 봉사단원은 “이재민들을 위해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지만 그들의 마음을 헤아리기에는 다소 부족함이 있는 것 같다”며 “빨리 이재민들이 힘을 내 지금의 아픔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속초시 협약 의료기관인 경희의료원에서 산불 이재민들을 위해 의료봉사에 나서자 자원봉사자들의 안내를 받은 이재민들이 하나 둘 마을회관에 나와 진료를 받기 시작했다.
이번 산불로 가옥피해를 입었지만, 이날 피해농가 지원활동을 벌이던 최원규 속초농협 조합장은 “6·25 전쟁 당시에도 큰 피해 없이 그대로 보존돼 왔던 마을의 한옥들이 이번 산불로 대부분 불에 타 너무나 안타깝다”며 “마을 주민들이 빨리 재기할 수 있도록 영농자재와 농기계 등을 무료 지원하고, 융자대출도 장기 무이자로 지원하고 있다”고 했다.
마을회관에는 전날 임시주거지인 농협수련원과 LH속초수련원에서 잠을 자고 아침 일찍 마을회관을 찾은 이재민 10여명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불안스러운 듯 앞날을 걱정하고 있었다.
한 이재민은 “수련원으로 숙소를 옮겨 여기에 있을 때보다 편안해서 좋다”며 “하지만 거기서 여기로 올 때는 마땅한 교통편이 없어 불편하다”고 하소연했다.
LH속초수련원은 이재민들의 교통편의를 위해 이날부터 셔틀버스를 제공하고 있다.
박춘랑(85) 할머니는 “지금도 산불을 피해 도망쳐 나오던 그날을 생각하면 가슴이 떨려 말이 안 나온다”며 “20대부터 한 마을에서 살아온 이웃들과 헤어지지 않고 다시 정든 마을에 집을 짓고 오순도순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어두훈 마을통장은 “지금은 전국 각지에서 구호물품이 답지하고 자원봉사자들이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어 큰 불편이 없지만, 온정의 손길도 끊기고 자원봉사자들도 떠나면 이재민들 스스로가 일어서야 하는데, 고령의 이재민들이 잘 헤쳐 나갈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우려했다.
어 통장은 “산불피해를 입지 않은 주민들도 산불매연에 밤잠을 설치는 등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고 했다.
자원봉사자들로 북적이는 마을회관과는 달리 20여 채가 불에 탄 마을 안 피해현장은 화마로 잿더미로 변해버린 4일 전 그 모습 그대로여서 마음이 무거웠다.
고명진 기자 mjgo9051@hanmail.net
장천마을 이재민들이 지난 9일 오전 마을회관 앞에서 진료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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