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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초리 성지(束草里 城址)<2>
속초성 축성 또는 중수연대로 추정되는 ‘천경3년’(1113년) 적힌 기와 발견
등록날짜 [ 2018년12월31일 17시21분 ]

지난 2012년 7월, 속초시 동명동 365-13번지(동명동 구, 오성식당 뒤쪽 야산) 일대에서 고려시대 만들어져 사용되던 토성(이하, 속초리 성지)이 발견되었다.
속초리성지는 현존하는 우리나라 역사문헌에는 존재하지 않고, 일제강점기 시절(1942년) 조선총독부가 발행한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에 ‘도천면(道川面) 속초리(束草里)에 있는 사유지로 속초리 부락의 서쪽방향으로 근접한 작은 언덕 위에 있다. 주위 약 삼백 칸이며, 흙으로 쌓았다. 거의 완전하다’라고만 나와 있는 실정이었으며, 이 지역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이곳을 ‘한나라의 수도’를 의미하는 장안마을(長安, 일명 장골)이라 부르고 있다.<연재를 이어가며>


■속초리성지 출토기와
  이 곳에서 발굴된 명문기와(글자가 새겨진 기와)의 경우 속초리성지의 축성(새로 만듬) 또는 중수(증축이나 보수)연대로 추정되는 천경3년(天慶三年, 고려 예종 8년으로 1113년에 해당) 기와 등이 발견되었는데, 공교롭게도 양양 진전사(陳田寺), 설악산 권금성(權金城)에서도 같은 연대의 기와가 발견되었다.
천경3년(天慶三年)은 1113년(고려 예종 8년)에 해당되는데, 이는 참고연도(參考年度)일 뿐 절대적인 속초성의 축성(築城)년도나 중수(重修)년도는 아니라고 생각된다. 예를 들어 ‘천경3년(天慶三年)’의 명문기와 발견지점이 석렬을 쌓고 흙을 판축한 곳에서 나왔거나 성벽 안쪽 각 종 건물지에서 나왔다면 그 축성시기가 1113년(고려 예종 8년)과 비슷할 수 있고, 판축을 하고 나서 경사면을 만든 곳에서 나왔다면 1113년 또는 그 이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확실한 것은 ‘천경3년(天慶三年)’의 명문기와가 성벽 안쪽 건물지와 판축후의 경사면으로 추측되는 지점에서 중복 발견된 것으로 보아 명문의 연호와 동(同) 시기일 것으로 추정된다.

  속초성 지역에서 출토된 명문기와 명문(銘文)의 내용은 <표-1>과 같다.
속초성에는 유달리 ‘관(官)’자 명문기와가 많이 발굴되고 있다. 『경주문화연구 제5호』의 차순철의 「관(官)자명 명문와의 사용처 검토」 라는 연구논문에 의하면, 관(官)자명이 찍혀있는 문자기와는   관청건물에 사용될 기와임을 나타내기 위하여 관(官)자를 표시하였다. <중략>  해당 지역의 지방이름과 ‘관’자가 결합된 문자기와를 살펴 볼 때, 당시에는 관(官), 성(城), 군(君)이 같은 뜻으로 사용되었다. 또한 고려시대 초기까지 이 문자기와가 나타나는 점은 당시 지방호족들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반영한 것이다. 관(官), 관초(官草), 신(臣)등과 같은 명문와가 출토되는 대형 건물지는 당시 지방호족의 거관(居館)으로 추정된다고 하였다.

■고려시대의 영동지역의 군사정황
 -고려시대 영동지역의 주진군(主鎭軍)
  “고려의 군사제도는 중앙에 2군 6위가 있었고, 지방의 각 도와 양계에 주현군(州縣軍)과 주진군(州鎭軍)이 있었는데, 지방의 주진군은 국경의 방어를 담당하였으며 지금의 영동지방에 주둔한 주진군의 배치를 정리하면 <표-2>와 같다.”
동계(東界)에서 주진군의 핵심이 되는 상비부대는 초군, 좌군, 우군이 있었고, 그밖에 수성(守成)의 임무를 담당한 영색군이 있었다. 이들 제(諸)부대는 25명의 행군으로 구성되는 ‘대(隊, 지금의 소대규모)’가 최하의 기본단위 부대였고, 그 장(長, 소대장)이 ‘대정(隊正, 종9품 관직)’이다. 교위(校尉)는 정8품 관직으로 대정(隊正)의 상관이다.
별장(別將)은 정7품의 관직으로 별장의 상관으로 낭장(郎將)이라는 정6품 관직이 있다.
대체로 교위 1명에 대정 2명의 비례(1:2)인 것으로 보아 50명 단위의 부대조직이 예상되며, 그 장이 ‘교위(지금의 중대장)’였을 것이라 짐작된다. 또 별장의 수가 교위의 반(半)인 것을 보면, 100명 단위의 부대조직과 그 장인 ‘별장(지금의 대대장)’을 생각할 수 있다. 양양에는 별장 3인, 교위 3인, 대정 9인, 행군 225인, 초군 4인과 좌군 2대 우군 4대, 영색군 1대가 배치되었다.
여기서 궁금해지는 것은 익령군(양양군의 옛 이름)의 별장(別將)의 수(數)와 행군(行軍)의 수를 비교해 볼 때 명주, 삼척, 울진, 간성보다 별장의 수가 많다는 것이다. 보통 다른 군현이 별장(1) : 교위(2)의 비례로, 교위(1) : 대정(2)의 비례인 반면 익령은 별장(1) : 교위(1)의 비례로, 교위(1) : 대정(3)의 비례로 별장의 수가 많다.
 상위계급의 군인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지켜야 할 중요한 성(城) 및 지역이 많다는 의미가 될 수 있으며, 긴급상황 발생시 빠른 결정을 위해서 상급 무관이 많이 배치되었을 수도 있다.
 고려시대 별장(別將)의 임무와 배치에 대해서 자세히 알려진 바는 없지만, 평상시 각 성(城), 포(浦), 봉수(烽燧) 등의 관리·수비 책임자로 있다가, 전시에는 중앙에서 파견되거나, 지방호장으로 임명된 낭장(郎將), 중랑장(中郞將)의 지휘를 받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기백은『고려 병제사 연구』에서 동계의 경우 낭장(郎將)은 안변도호부, 9방어군 중 7방어군(예주, 명주제외)과 10진중 원흥, 영인, 요덕에만 배치되어 있다고 하였으며, 1차 사료는 아니지만 2차 사료로써 ≪강릉김씨 대동보≫에 기록된 16세손인 김정(金貞)이라는 분의 공적을 보면 “고려 고종10년(1223년) 사마진사시에 합격, 1253년에 낭장(郎將)으로 몽고병이 양양을 함락하였을 때 이를 수복하고 격퇴한 무훈…”이라는 기록과 『고려사절요』권4, 덕종 원년(1031년) 2일에 “통주(通州) 호장(戶長) 김거(金巨)는 거란 침략시 전투에 참여하여 전공을 새운 공로로 낭장(郎將)으로 승진하였다”라는 기록으로 보아 지방호장들이 전시에는 무관직을 겸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정리해 보면 “향리의 장교직 겸임규정은 문종대 만들어졌지만 이미 이전부터 향리들이 지방군을 지휘하는 장교직(將校職)을 맡고 있었을 것(권영국 『사학연구 제 64호』)”으로 보아 호장(戶長)인 김정(金貞)의 업적과 어느 정도 개연성이 있다고 판단되며, 지방에 왜구의 침입 등의 전란시 지방의 주현군을 지휘할 상위계급의 무장이 개경으로부터 파견되었거나 각 도의 치소성(治所城)에서 파견되어 진 것으로 보여 진다.
 상기 도표의 별장(別將)의 수와 향리들이 장교직을 겸임한 것으로 봤을 때, 명주이외에 익령에 별장이 3인을 배치했다는 것은 별장이 지휘할 성이 3개 이상 있었다고 추측할 수 있는데, 익령(翼寧)내의 3개의 성은 양양군 경내(境內)의 축성시기를 볼 때, 나말여초의 양양 임천리의 석성산성(石城山城), 신라시대부터 사용되어 온 현남면 후포매리 산성(後浦梅里 山城)-홍영호는 「양양 후포매리 신라산성의 고찰」에서 “이 산성은 익령현의 속현인 동산현의 치소성 또는 배후성으로 활용되었을 것이다”라고 추측했다-과 지금 논하고자하는 1113년에 축조 또는 중수된 속초성(束草城)로 보여지는데, 이에 대해서는 좀 더 자세한 연구가 필요하다 생각한다.                                        <계속>
천경3년의 명문기와(사진 3).


정상철
속초문화원 부설
속초시향토사연구소 연구위원

 

설악신문 (soraknews@soraknews.co.kr)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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