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웠지만 짧았던 가을은 지나가고 겨울이 코앞에 다가왔다. 숨 막히게 더웠던 지난 여름의 기억은 이제 아스라한 추억이 될 뿐이다.
겨울의 초입에 와 있다. 문득 가난한 사람들에게 무더위와 혹독한 추위 중 어느 것이 더 견디기 힘들까를 생각해 본다. 둘 다 견디기 힘든 건 마찬가지이겠으나 어쩌면 당연하게도 혹한의 추위가 더 견디기 힘들 거라는 생각이 든다. 딱히 그 이유 때문이랄 수는 없겠지만 그래서인지 겨울이 되면 김장 담그기, 연탄배달 봉사, 불우 이웃돕기 행사 등 사회적 약자를 돕는 행사들이 많아진다.
사회적 약자들을 비롯한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다 함께 잘 살아가는 방편으로 부익부 빈익빈의 자본주의의 모순을 어느 정도 해결해 왔던 자본주의의 자구책 중의 하나가 바로 사회복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은 많이 보편화되어 있는 사회복지라는 용어도 사실 20~30년 전만 하더라도 생소한 용어였을 테고 오히려 사회사업이라는 용어가 좀 더 보편화된 말이었을 것이다. 역동의 근현대사를 겪어왔기에 우리나라에서는 일반적으로 사회사업이라는 용어자체가 가진 자들의 시혜 정도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았고, 고아원, 양로원 등 복지시설의 운영이라는 개념에서 머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사회학자 W. 프리드랜더의 학문적 정의에 따르면, 사회복지는 이상적인 면을 강조하며 제도, 정책 등의 방법으로 불특정 대상에게 사전적, 예방적인 기능을 수행한다. 반면에 사회사업은 실천적인 면을 강조하며 지식, 기술 등의 방법으로 부분적, 특정적인 대상에게 사후적, 치료적인 기능을 수행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간단히 도식화 해보면 사회복지는 하드웨어, 사회사업은 소프트웨어에 해당한다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사회복지학도 지금은 가까운 경동대에도 사회복지학과가 개설되어 있을 만큼 보편화되어 있지만 예전에는 서울에도 학과가 개설되어 있는 대학이 서울대, 연세대, 중앙대, 숭실대, 이화여대 등 손에 꼽힐 정도로 몇 학교에 지나지 않았었다. 또한 노인복지, 아동 청소년복지, 장애인복지, 의료복지 등 사회복지 전 분야에서 정부차원의 지원이 빈약했기에 각종 종교단체에서 그 역할을 대신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이제는 우리 사회가 점차 경제적 여유가 생기기 시작하고 베풂과 나눔, 봉사가 일상화가 될 만큼 사회복지 분야도 많이 발전되었다고 볼 수 있겠다.
최근 새로 개축한 속초 문화예술회관 옆에 자리 잡고 있는 무료급식소 ‘작은 형제의 집’의 철거와 관련해서 많은 말들이 오가고 있다. 1996년 시작된 이 무료급식소는 그동안 정부의 지원 없이 지역독지가나 자원봉사단체로부터 물적, 인적지원을 받아 20여 년 간 노숙자와 생활이 어려운 노인들을 대상으로 무료급식을 실시해 왔다. 또한 그 기반이 되었던 천주교 신자들뿐만 아니라 법원과 경찰 등 관공서와 속초시 여성단체협의회 등 각종 사회단체들의 부식제공과 금전후원 등을 통한 나눔과 헌신적 봉사로 운영되어 왔다. 속초시청의 강제 철거명령 공문으로 촉발된 이 문제는 현재 천주교 영북지역 사제단의 성명서 발표 등으로 수면위로 떠올랐다.
필자도 그 곳에서 급식봉사를 한 적이 있었다. 어느 날엔가 무료급식이 끝난 직후였다. 급식소에서 비닐봉지에 담아준 쌀을 챙기던 한 노인이, 주위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식탁위에 남아있던 이미 김이 빠져버린 페트병에 담긴 음료수를 허겁지겁 허름한 가방에 담던 모습이 문득 눈에 어른거린다.
사람의 신체가 신체의 각 부분까지 혈액이 도달하기 위해서는 대동맥, 대정맥만이 아니라 모세혈관도 필요하듯이 국가나 지방정부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에 민간 사회복지시설이라는 모세혈관의 존재도 필요한 것이다. 천주교계와 시청, 사회단체들이 중지를 모아 어렵고 소외된 그들이 이 추운 겨울, 따뜻한 밥 한 끼를 더할 수 있는 대안 마련이 절실한 때다.
전형배
데일리F&C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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